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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n 16. 2019

퇴사 후 유럽-스페인 톨레도에서

2018.04.19

자유롭고 싶었지만 두려운 것도 사실이어서 한국에서 숙박, 교통은 모두 예약을 완료했었다. 때문에 일정에 맞춰 다녀야 하는 여행이 답답하거나 현장에서 기대를 반감시키지 않을까 걱정도 됐었다. 하지만 사전에 준비를 해 온 것은 잘한 일로 결론을 내렸다. 말 한마디, 글자 하나 못 읽는 나에게 사전에 계획했던 일정표도 없었다면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두려웠을 것이다. 한국에서 밤이 새도록 수많은 여행 후기를 살펴보고, 여행책을 사서 공부했던 것이 이렇게 든든하고 뿌듯할 수 없었다. 숙박과 교통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 나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지는 것들이니 딱히 답답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뚜벅이 여행자로서 하루 2만 보는 거뜬했었는데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이 신체증상을 통해 나타날 때가 참 아쉬웠다. 평소에 운동 좀 할 걸..

지금은 마드리드에서 떠나와 스페인의 옛 수도였던 '톨레도'에 있다. 옛날 스페인의 건축 양식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구시가지에서 그 시대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구시가지에는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저 관광지로 남겨진 유령도시가 아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한국과 비교하면 '북촌', '안동 하회마을' 정도일까?


여행을 다닐 때마다 이 나라, 이 도시, 이 마을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 살만한 곳인지, 내가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현실적인 고민들을 했다. 20대에는 해외에서의 삶이 막연한 '로망'이었다면 30대가 된 지금은 '생존'에 초점이 맞춰진다. 잠시 여행을 온 것처럼 매일을 놀고먹으며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정말 살고 싶은 곳에서 무엇을 해 먹고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여행의 두 번째 날이고, 나는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 곳에서 산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특별히 무엇을 '하고 싶다'라든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도 있지만, 실상 내가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아무 일이나 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는 차라리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의 사고 흐름이 너무 '보수적'이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책망하며, 20대에 무모한 도전이라도 눈 딱 감고 시도해 봤으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상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생각을 가지고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그 당시에는 빨리 안정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서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었는데 그게 옳은 판단 아니었을까? 하며 내 안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 도달한 답은 그때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우연 같은 필연이 이어져 흘러온 지금의 내 모습도 스스로가 선택한 길 위에 있기에 후회는 없다.


톨레도는 미로 같은 구시가지를 걷는 것도 매력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장관이었다. 이 날을 위해 큰 맘먹고 호텔을 예약한 보람이 있었다. 눈에 담고 있어도 아쉬운 마음이 절로 들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도 너무 아까웠던 오늘 하루. 1분 1초, 시간으로 셀 수 없는 모든 순간들을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한다. 지금 첫 경험이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지도, 지금처럼 강렬하게 뇌리에 박히지도 못할 거니까. 오늘의 시간들을 잘 간직하자. 하루하루 시간을 소중히 하자. 즐겁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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