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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유럽-스페인 톨레도에서

2018.04.19

by 홍한울

자유롭고 싶었지만 두려운 것도 사실이어서 한국에서 숙박, 교통은 모두 예약을 완료했었다. 때문에 일정에 맞춰 다녀야 하는 여행이 답답하거나 현장에서 기대를 반감시키지 않을까 걱정도 됐었다. 하지만 사전에 준비를 해 온 것은 잘한 일로 결론을 내렸다. 말 한마디, 글자 하나 못 읽는 나에게 사전에 계획했던 일정표도 없었다면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두려웠을 것이다. 한국에서 밤이 새도록 수많은 여행 후기를 살펴보고, 여행책을 사서 공부했던 것이 이렇게 든든하고 뿌듯할 수 없었다. 숙박과 교통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 나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지는 것들이니 딱히 답답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뚜벅이 여행자로서 하루 2만 보는 거뜬했었는데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이 신체증상을 통해 나타날 때가 참 아쉬웠다. 평소에 운동 좀 할 걸..

지금은 마드리드에서 떠나와 스페인의 옛 수도였던 '톨레도'에 있다. 옛날 스페인의 건축 양식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구시가지에서 그 시대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구시가지에는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저 관광지로 남겨진 유령도시가 아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한국과 비교하면 '북촌', '안동 하회마을' 정도일까?


여행을 다닐 때마다 이 나라, 이 도시, 이 마을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 살만한 곳인지, 내가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현실적인 고민들을 했다. 20대에는 해외에서의 삶이 막연한 '로망'이었다면 30대가 된 지금은 '생존'에 초점이 맞춰진다. 잠시 여행을 온 것처럼 매일을 놀고먹으며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정말 살고 싶은 곳에서 무엇을 해 먹고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여행의 두 번째 날이고, 나는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 곳에서 산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특별히 무엇을 '하고 싶다'라든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도 있지만, 실상 내가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아무 일이나 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는 차라리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의 사고 흐름이 너무 '보수적'이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책망하며, 20대에 무모한 도전이라도 눈 딱 감고 시도해 봤으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상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생각을 가지고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그 당시에는 빨리 안정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서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었는데 그게 옳은 판단 아니었을까? 하며 내 안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 도달한 답은 그때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우연 같은 필연이 이어져 흘러온 지금의 내 모습도 스스로가 선택한 길 위에 있기에 후회는 없다.


톨레도는 미로 같은 구시가지를 걷는 것도 매력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장관이었다. 이 날을 위해 큰 맘먹고 호텔을 예약한 보람이 있었다. 눈에 담고 있어도 아쉬운 마음이 절로 들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도 너무 아까웠던 오늘 하루. 1분 1초, 시간으로 셀 수 없는 모든 순간들을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한다. 지금 첫 경험이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지도, 지금처럼 강렬하게 뇌리에 박히지도 못할 거니까. 오늘의 시간들을 잘 간직하자. 하루하루 시간을 소중히 하자. 즐겁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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