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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n 22. 2019

퇴사 후 유럽 - 스페인 론다에서

2018.04.26

세비야에서 짧았던 하루를 마치고 론다로 향했다. 이제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좀 익숙해지는지 마음이 한결 편하다. 몇 시에 하루가 시작되고, 언제 마감되는지 예상이 되니 이 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며 안정감이 든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비슷한 일상을 경험하면 낯선 곳도 오래 지낸 곳처럼 편해진다.


스페인 론다는 tvN 예능 '꽃보다 할배'를 통해 알게 된 곳이다. 프로그램에서는 '누에보 다리'만 짧게 보여준 것 같은데 그 한 장면이 나를 이 곳으로 오게 만들었다. 사실 세비야를 일정에 넣은 것도 포르투갈에서 론다를 오는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계획하기 위해서였는데 결론적으로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하나의 나라이지만 각 도시마다 느낌이나 특색이 달라서 여행하는 내내 다른 나라에 있는 느낌이었다.


세비야에서 버스를 타고 론다로 이동하는 동안 도시의 모습은 전혀 없고 오로지 산과 들이 펼쳐지는 끝이 없는 길을 차창 밖으로 감상했다. 터미널로 예측되는 곳에 멈추면 버스 기사가 도시 이름을 불러주었는데, 혹시나 말을 못 알아듣고 목적지에 내리지 못할까 봐 긴장하며 여행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긴장감도 잠시, 다시 차창 밖에 보이는 익숙한 듯 낯선 스페인의 고요한 전원풍경에 깜빡 잠이 들기도 하며 긴 버스 여행을 즐겼다.


그렇게 도착한 론다는 깎아지른 암벽 위에 위치한 작은 도시였다. 도시 사이에는 깊은 협곡이 있었는데 그 협곡을 이어주는 다리가 '누에보 다리'였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그림 같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만들고, 사람의 힘으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자 만든 인공 다리가 마치 자연의 일부분인 듯 어울리며 봐도 봐도 감탄이 나오는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삶의 터전을 유지해 온 이 도시가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있다 보면 내가 살고 있는 곳의 터전이 너무 쉽고 빠르게 변한다는 생각이 든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가끔 그런 변화들이 인간의 욕망을 가시화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서글펐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며 과거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현대화시키는 한국의 발전이 과연 그다음 세대를 위해 마냥 좋기만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양성과 특색을 잃어버린다면 가장 '한국적인 것'도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지금 당장 스페인에 있는 누군가가 한국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을 소개해 달라고 하면 자신 있게 말할 장소가 없다. 물론 옛것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발전시키되, 나머지는 시간과 함께 천천히 변하도록 놓아두면 좋을 텐데 그 점이 아쉬웠다.


여행 중이긴 하지만, 이곳에 오니 왜 그렇게 한국에서 하루하루를 급급하게 살았나 싶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빠르고 정신없이 변해가는데 현실에 발맞추지 못하는 내가 잘 못 산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었다. 돌아가서 다시 살아갈 날들을 고민하며 '일'과 '삶'에 대해 앞으로는 다른 태도를 가져야 함을 느낀다. 일은 일이고, 나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은 다른 측면이라는 것을. '일'에서의 성취가 곧 '삶'을 정의 내린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시간들이 얼마나 나를 병들게 만들었는지를 알기 때문에 일과 분리된 나만의 삶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만 할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가야겠다. 내가 맡은 일만 잘하면 되는, 쓸데없는 인간관계에 신경 쓰느라 해야 될 일도 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는 그런 직장은 이제 피하고 싶다. 나에게 집중하고 나에게 에너지를 쓸 수 있다면 돈을 많이 받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을 것 같다.


내 생에 언제 이렇게 긴 여행을 올 수 있을까. 한국에 돌아가서 일을 시작하면 앞으로의 삶을 위해 집중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 같다. 한 동안 이렇게 여행을 오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급급하지 않게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가는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욕구를 채우기보다 내 안의 평화와 안정에 집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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