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지기 Apr 27. 2023

친구를 정리했습니다

진정한 친구라면 그러는 거 아니야

관계를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나의 치부를 다 아는 친구는 더욱 어렵다.

몇 년 전 친했던 친구를 정리했다.

무시당해서.

다른 부드러운 표현으로 바꾸려 이리저리 고민해 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나는 친구로서 존중받지 못했고, 자책회로를 작동시켰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남 탓을 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 탓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남 탓을 하는 사람은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다.

자기 탓을 하는 사람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처럼 자기 잘못을 찾을 때까지 자아성찰을 한다.

자아성찰은 '내가 왜 그랬을까?'로 귀결된다.


A는 성당에서 만난 친구였다.

동갑내기였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어 빠르게 친해졌다.

신앙 안에서 우정이 돈독해졌고 깊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A의 남편은 의사였고 A는 주부였다.

의사아버지 덕에 경제적 어려움 없이 악기를 전공했고, 집안의 막내로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 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고 했다.

그것은 A의 복이었기에 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자라온 환경이 너무 다른 A는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경찰이었지만 어머니가 지병으로 아프셨다.

결코 가난하지 않았으나 경제적으로 풍족한 적도 없었다.

나는 나이에 비해 빨리 철이 들어버린 눈치 빠른 아이였다.

동생보다 한 살 많다는 이유로 할 일이 많았다.

심부름은 내 차지였고 친구들과 놀러 나갈 때도 동생을 데리고 같이 가야 했다.

공부도 잘해야 했고 좋은 성적을 받아와야 했다.

아픈 엄마가 돌아가실까 봐 늘 두려움에 떨었고 사랑받은 기억보단 잘못해서 혼난 기억들로 가득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나의 어린 시절.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마음동행센터에서 상담받다가 애정결핍으로 울고 있는 겁 많은 내면아이를 찾게 되었다.

꾸준한 상담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상담사님을 믿고 주말 시간을 쪼개 1년 넘게 상담을 받았으며 그 시간은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A와 만날 약속을 잡다가 토요일에 상담센터에 가야 해서 시간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자 A는 웃으며 나무랐다.

"상담? 마음지기야, 요즘 세상에 마음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어 다 아프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뒤에 생략되었을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너만 아픈 거 아냐~ 왜 그리 유난이야?'

어찌어찌 다음에 시간을 맞춰보자며 전화를 서둘러 끊고 나서 생각했다. A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게 맞나?

당시 공지영작가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책에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찾아 읽었다.


 한 번뿐인 내 인생 이렇게 살다가 가기 싫다 하고 마음먹은 이후, 나 자신을 사랑하고 지금 여기를 소중히 여기겠다 마음먹은 이후, 내게 또 하나의 변화가 찾아왔는데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과 우정을 맺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소한 사적 관계도 끊어내는 일이었다. 나중에는 전화나 문자도 받지 않았다.


 아주 쉬운 예를 들면 "너 의외로 다리가 굵다"라든가 "너 얼굴이 생각보다 커", "어머 배 나온 것 좀 봐. 왜 그렇게 살이 쪘어. 얼른 빼!"라든가, "너 성질 좀 안 좋잖아", "너 머리 그렇게 자르지 마. 이상해" 이런 말을 하는 친구들을 멀리했다.

 가끔 이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까르르 웃는다. 내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또 가끔 후배들은 물었다.

 "언니 그러면 주변에 사람 아무도 남지 않을 거예요. 그걸 다 끊어내면 혼자 남아요"

 그러면 나는 대답했다.

 "그런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나 자신을 폄하하는 말들과 괴로워하며 싸우느니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나아요"

 "듣기 싫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 너를 위해 이러는 거야"라는 사람은 "듣기 싫은 이야기를 왜 굳이 해야겠니? 나는 성녀가 되고 싶은 게 아니야"라는 말도 없이 그냥 차단했고, "저기 내가 좀 심한 말을 해야 할 텐데 괜찮겠니?"라고 접근해 오면 "아니 괜찮지 않으니까 절대 하지 마세요!"라며 응수했다. "초면에 실례지만 좀 목소리가 크시네요"라고 하면 "초면에 실례를 이렇게 심하게 하시는 분이 남의 약점을 지적하시다니요"했다. 그냥 되었던 것 아니다. 연습했다. 기회를 잡으려고 기다렸고, 그리고 기회가 오면 떨리지만, 이렇게 하면 내가 교양 없고 예의 없고 속 좁은 사람이라고 혹은 꼰대라고 욕할까 봐 겁이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다.

 설사 그 대상이 결코 단절하기 힘든 부모나 형제나 자식이라도 마찬가지이다. 단절이 어려우면 거리 두기를 권한다. 잠시 격리되어 있는 것 말이다. 그렇다고 엄마가 아빠가 자식의 관계가 취소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들과의 관계보다 소중한 나를 소중하게 지키는 것이다. 내가 소중하지 않은데 내가 맺는 관계는 소중할 수 있는가? 소중하지도 않은 내가 하는 효도와 사랑이 소중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자기 주변에 아부하는 사람들만 남겨두게 되어 우리는 결국 교만해질 거예요"라고 말하는 후배도 있었다. 걱정하지 마시길,  아부로 둘러싸여 교만해질 만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지 않을 테니.

 "그러면 제 단점을 고치지 못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라고 묻는 이도 있었다.

 걱정하지 마시길. 우리는 자라면서 지금까지 우리의 단점에 대해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다. 진짜 자기 단점을 몰라서 문제가 되었으며, 말로 해서 고칠 건데 말을 못 들어 못 고친 단점이 있던가. 우리는 우리의 장점에 대해 들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관계를 정리해 본 적이 없어서 영문 모르고 손절당했을 그 친구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그게 미안할 일이 맞나 싶었다.

내가 같은 얘길 그 친구에게 들었다면 "어머 그랬구나... 정말 힘들었겠다 괜찮아?"라는 위로의 말을 먼저 건넸을 거라는데에 생각이 미치자 미안함이 가셨다.

그렇게 나를 지키기 위해 관계를 정리하는 방법을 배웠다.


작가의 이전글 사주팔자를 아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