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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기 May 22. 2023

시작은 늘 그렇듯 일상과 같았다.

심리상담은 처음입니다만

따분한 일상 속 사무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깨끗하고 햇볕은 따스했다.

'콧바람이 간절한데...' 너무나 좋은 날씨에 엉덩이가 들썩거리던 즈음, 몇 달 전 신청하고서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던 심리상담일을 잡아달라는 전화가 왔다.

회사에서 주관하는 일정이라 상담을 받으러 가는 날은 하루 쉴 수 있다는 선물 같은 소식을 듣고 고민 없이 일주일의 고비 수요일을 택했다.

그렇게 다가온 당일.

괜한 긴장감에 잠을 설친 탓일까?

상담이 가까워질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커져갔다.

이상하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담사님을 만났고, 그렇게 나의 첫 상담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동료의 이야기였다.

상담을 받고 싶지만 일이 너무 바빠서 짬을 내지 못하는 동료의 고민거리 이야기.

"그 친구를 같은 사무실에 있는 동료가 은근히 따돌리며 괴롭혀서 힘들어해요"

"아, 그런데 왜 동료들은 방관하는 걸까요?"

"따돌림을 주도하는 애가 분위기나 대부분의 모든 결정을 좌지우지해요. 다른 사람들은 그냥 묻어가는 거죠. 걔가 워낙 쎄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무척 잘해줘서 특별히 불편한 게 없으니까요. 따돌리는 동료가 예뻐서 질투하는 게 큰 것 같은데, 본인도 예쁘거든요? 근데 그 친구가 같은 사무실에 오게 되며 자기가 원 탑이었다가 밀려나는 느낌이 있었나 봐요 "

"아... 여왕벌이요?"

"네 맞아요! 이 구역의 여왕벌은 나였는데, 진짜 여왕벌이 나타났다는 위기감이 느껴졌나 봐요. 저는 누구 따돌리고 그런 꼴 못 보거든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집단 따돌림당한 적이 있어서.."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래서 더 그 동료분의 상황이 이해 가고 공감 갔겠네요"

"그렇죠... 전 그때 담임선생님이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던 기간 동안 같은 반 여자 친구들 대부분이, 그것도 저랑 가장 친하게 어울렸던 친구가 주도해서 저를 따돌렸어요. 사고 다음날 아침 선생님이 안 나오시자 친구들 태도가 돌변해서는 저를 화장실로 불러서 훈계를 하더라고요. 너 우리가 왜 이러는 줄 알아? 너는 잘난 척해서 재수가 없어. 네가 뭔데 잘난 척이야... 돌아가며 한 마디씩 던지는 친구들의 행동에 너무 당황해서 우물쭈물하는 사이 쉬는 시간이 끝났고 학교수업이 끝나면 다시 화장실로 오라던 으름장을 피해 집에 가는 길에 친구 네 명이 따라오더라고요. 그날 아침에 비가 와서 다들 우산이 있었는데, 그 우산으로 제 가방을 찌르고 때리면서 쫓아왔어요. 집까지 있는 힘껏 달려가 엉엉 울며 엄마에게 겪었던 일을 얘기했죠. 저녁에 엄마가 쫓아왔던 애들 집에도 병원에 계시던 선생님께도 전화를 했어요.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쫓아왔던 애들이 사과랍시고 하는 말이 '야, 내가 너한테 미안해서 사과하는 게 아니라 우리 엄마가 시켜서 사과하는 거거든?' 그 말투 표정이 아직도 생생해요. 사실 담임선생님이 저를 유독 예뻐해 주셨어요. 제가 초등학생 때는 공부도 제법 잘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꽤나 성실했거든요. 뭐든시키면 시키는 대로 잘했어요. 그게 애들 눈엔 잘난 척처럼 보였나 봐요. 바로 그다음 날, 담임선생님께서 깁스를 한 상태로 학교에 잠깐 오셨어요. 제가 걱정돼서 나오신 건데, 걔들은 그걸 어떻게 미리 알고 저한테 사과편지를 쓰고, 제 손을 잡고 울먹이며 '미안해 난 널 따돌리고 싶지 않았어 00 이가 시켜서 그랬어 용서해 줘'라고 말해주는 게 눈물 나게 고맙더라고요. 그 일을 겪은 이후로 사람들 앞 잘 나서지 않게 되었죠."

"아.. 그때 참 순수했네요. 어린 나이에 그런 경험은 정말 힘들었겠어요."

"그 일 이후로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고마울 일이 아니었는데 그땐 뭘 몰랐으니까요."


"이혼하셨네요.. 아이가 몇 살인가요?"

"열 살, 초등학교 3학년이에요. 큰아이 4살 되던 해에 이혼했어요. 둘째는 돌 전이었고요. 이혼 자체에 대한 후회는 해  적이 없는데, 둘째를 애아빠가 할머니와 키우겠다 데려가서는 고모네 집에 맡겨서 키우더라고요. 그 해에 세월호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고에 아이가 죽었다는 마음으로 보냈어요. 그 당시에 그 생각만이... 둘째를 보내고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시작한 신앙생활이 큰 도움이 됐죠"

"그랬군요. 첫째 데려오신 이유가 있나요?"

"애아빠가 교대근무를 했고 저도 언제든지 교대근무 할 수 있는 환경이라 부모님께서 큰 애를 맡아 키워주시면서 이미 부모님과 큰애의 애착형성이 되어있었고 둘째는 어리기만 했으니까요. 애아빠랑 결혼할 때도 큰 애를 임신해서 결혼했죠. 그때 임신 안 했으면 그 사람이랑 결혼 안 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결혼을 안 했어도 애는 낳았을 거예요. 사실 애아빠 만나기 전에 정말 사랑해서 결혼을 결심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도 임신을 해서 결혼하겠다고 집에 얘기했거든요. 그 사람이 직장도 변변찮고 나이도 많은데 가진 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된 엄마가 자기가 너무 오래 살아서 못 볼 꼴을 본다며 죽어버리겠다고 심하게 반대를 했어요. 사실 엄마가 간경화로 20년 넘게 투병하시다가 2007년에 저와 이모의 간 기증으로 수술받고 건강해지신 지 얼마 안 됐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빠도 같이 반대를 했죠. 그날 술을 잔뜩 드시고 새벽 네 시에 제 방에 들어와서는 방바닥에 칼을 꽂고 너고 그 자식이고 전부 다 죽여버릴 테니 네 몸을 원상태로 만들라며 임신중절수술을 하라고 무섭게 협박하시더라고요. 그러고 나서는 제가 입사하고 나서 사드렸던 옷을 전부 칼가위로 찢고 제가 산 물건들을 집어던져 부수고 난리가 났어요. 그다음 날 제가 선언했죠. '나에게도 조건이 두 개 있다. 받아들여진다면 원하시는 대로 수술하겠다. 첫 번째는 나의 분가이다. 내 인생을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당신들과는 같이 살 수 없으니 내가 나가겠다. 두 번째는 나는 더 이상 당신들 딸이 아니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내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 나 말고도 동생이 있잖냐 자식 하나 있다고 생각하고 사셔라. 수술해서 간도 드렸지 않냐 나는 내가 이미 자식으로서의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자 알았다고 하시더군요. 보험과 적금을 해약해서 원룸을 전세로 계약하고 이사하는 날, 16주 된 아이를 수술하는 건 불법이라 어렵게 수소문한 산부인과에 임신중절수술을 하러 갔는데 애기 아빠가 와서 사인을 해야 한다더군요. 망설이다가 연락했더니 수척한 얼굴로 와서 사인을 하고서 수술을 했는데.. 전 아직도 수술실의 그 광경이 잊히질 않아요. 정말 오래된 산부인과의 수술실이었는데 그 수술대와 조명, 소독약 냄새, 화면에 보이던 아이의 마지막 모습.. 아이가 '꼼짝 마' 한 듯 팔다리를 쭉 펴고 있었거든요. 그러고는 기억에 없는데... 마취에서 깨어나 구토하며 내가 죽었어야 했다고 죄책감에 많이 울었죠... 그러고는 원룸으로 돌아갔는데 가족도 없고 남자친구도 없고 애기는 잃었고 기댈 곳이 없어 너무 외롭고 세상에 혼자가 된 기분이었어요. 특히 애기한테 미안해서요. 나 살자고 내가 너를 죽였구나 나는 살 자격이 없다며 약국마다 들러서 수면유도제를 사다가 유서를 쓰고는 한 번에 먹었어요. 그때, 아마 살고 싶어서 그랬겠죠? 딱 한 사람한테 문자를 보냈는데 그 언니가 그때 제 사정을 다 알고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면서 유서를 안 남긴 사람이었거든요 '언니 잘 자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보내고는 잠들었는데 누가 현관문을 막 두드려서 일어나 보니 그 언니가 제 문자를 받고는 밤중에 바로 택시를 타고 왔더라고요. 언니는 다시 잠든 절 두고 무슨 일인지 방을 둘러보며 유서와 약을 발견하고서 지인에게 전화로 응급실에 가야 할지 묻고서 119에 신고하면 일이 커지니 잠자면서 숨을 쉬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물을 자주 먹여서 약기운이 빠져나가게 하라는 조언을 듣고 밤새 저를 지키고는 다음날 회사에 전화해서 연가를 내주고 엄마한테 전화해 주고 언니는 늦게 출근하러 갔죠. 엄마는 놀래서 울고불고 쫓아오고.. 그 일 이후로 부모님이 저를 조금 덜 간섭하셨죠. 특히 제가 결혼을 안 할 거라고 생각하셨고요. 저도 누구를 만날 맘이 전혀 없었는데 묘하게 소개받았어요. 친한 언니의 동기를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저한테 자기랑 같이 근무하던 애아빠를 소개한다는 거예요.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같은 회사 다니는 사람은 싫다고 거절했는데 제 핸드폰 번호까지 알아내서는 동료니까 그냥 밥 한 번만 먹으라고 집요하게 부탁해서 제 인생을 건 정말 비싼 밥을 먹게 된 거죠. 그때 제가 혼자 산지 1년쯤.. 연애에 뜻을 두지 않아서 남자친구가 없던 시기거든요. 외로워서 판단력이 흐려진 때에 너무 잘해주던 사람을 만나서 덜컥 임신을 하게 된 걸 알았을 때, 다른 대안은 없었어요. 결혼을 안 해도 애는 무조건 낳겠다는 결심을 했죠.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걸 깨달았던 건 결혼하고 한 달도 채 안 됐을 때에요. 결혼이 안 맞는 사람과 결혼한 거죠. 그렇지만 다들 그렇게 사니까 저도 그냥 그렇게 사는 건 줄 알고 둘째까지 낳은 건데 제가 크게 잘못 판단했다는 걸 둘째를 낳고서 깨달았죠. 그래서 둘째한테 미안해요. 나중에 만나서 제대로 키워주지도 못할 걸 무책임하게 왜 낳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좋을지 모르겠거든요."

"정말 많은 일이 있으셨네요.. 오늘은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갔고요.. 혹시 주말에 시간 괜찮으시면 저랑 상담을 이어가 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아... 제가... 상담이 필요한가요?"

"짧은 시간 안에 정말 많은 얘길 해주셨는데, 우선 죽음과 관련된 깊은 우울이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요. 주말에 시간만 괜찮으시다면 이번 기회에 짚고 가보시면 어떨까 싶어서요."

"네... 그럼 언제 오면 될까요?"

"이번 주 토요일 세 시 괜찮으세요?"

"네"

그렇게 나의 상담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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