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연이어 있기에 챙겨야 하는 입장도 부담스럽겠지만 받는 입장도 마냥 좋진 않다.
사실 좀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가뜩이나 지출이 많은 달에 짐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서.
게다가 작년 이맘때 이후 개인적으로 더욱 그렇다.
이유는 자유롭게 짐작해 주시길..
(공무원에게는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습니다)
"딸!생일 미역국 끓이고 있어 집에 와서 밥 먹고 출근해~" 라는 엄마의 문자로 눈을 뜬 아침,부리나케 달려가 뜨끈한미역국으로 배를 채웠다.
아버지께서 밭에 나가시는 길에 편지봉투를 쥐어주신다.
두툼한 봉투에 놀라 이게 뭐냐고 쫓아가니 편지를 쓰셨다며 읽어보라고 서둘러 나가신다.
겉면에 "딸 생일 축하해"라고 쓰여있다.
정갈한 글씨체의 편지와 오만 원권 스무 장이 들어있었다.
'딸에게'라고 시작된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아버지의 친필 편지
부모님께 나는 첫 아이가 아니다.
내가 나기 3년여 전 엄마는 아들을 낳았으나 태어나자마자 아팠고, 당시 1년 근무를 조건으로 타 지역에 임용되었으나 약속대로 발령을 내주지 않아 순경을 그만두고 간부후보생 시험 준비로 하필 아버지가 무직이던 때라 의료보험마저 없는 데다 수술에 필요한 큰돈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아픈 아이를 퇴원시켜 집으로 데려와 숨이 넘어가는 모습을 애통하게 지켜보다가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 가슴에 묻으셨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간후생 시험준비를 접고 다시 순경공채로 두 번째 입사를 하셨다.
그렇게 얻은 아이가 바로 나, 마음지기다.
편지를 읽고 한참을 울었다.
내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신 내 부모님.
어버이날 엽서 한 장과 약간의 현금을 보태 며칠 뒤 떠나실 여행에 작고 귀여운 용돈으로 쓰시라 드린 금액의 몇 배를, 평생 마음에 귀히 간직할 편지와 함께 돌려주시는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헤아리는 것이 가능할까..
꽃다발을 전하러 퇴근길에 다시 들른 부모님 댁에서 짧은 대화를 나누며 편지에 대한 감사인사를 드린 다음 저녁 약속을 위해 서둘러 나오는데 딸이 뒤에서 부른다.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 사랑해요♡" 라며 내민 선물.
엄마만을 위한 선물 상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저녁약속 장소로 향했다.
생각보다 길어져버린 일정에 밤 열한 시가 넘어 집에 귀가해 그제야 딸이 준 선물상자를 열어볼 수 있었다.
그 안에는 머리핀과 여러 가지 선물들과 편지가 있었다.
"꼭! 엄마 집에 가서 읽으세요-"라고 쓰인 봉투를 열었더니 빼곡한 글씨로 채워진 편지가 있다.
딸에게 받은 편지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또 울고 말았다.
<만약 제게 다음 생이 있다면 제가 엄마에 엄마가 되어서 저한테 해주셨던 것처럼 사랑을 듬뿍!! 드리고 싶어요! >라는 구절에서 가슴 저린 울림이 있었다.
내 아이가 나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는 말을 듣게 되다니,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있을까...
아... 내가 이렇게나 많이 사랑받고 있었구나...
그저 내가 다른 이에게 부담일 거라는 지레짐작으로 사랑받아야 마땅한 나를 내가 나도 모르게 폄하하고 있었던가보다.
내 생일을 내가 제대로 축하해줘야 했다.
마음지기야, 좀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지난 1년 넘게 아픈 몸과 마음으로 힘든 시간들 버텨내느라 참 많이 애썼어.
이제 건강 잘 추스르면서 빨리 낫고 싶다는 욕심은 내려놓고 지금껏 받은 사랑 잊지 말고 베풀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