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냐? 소유냐?
돈은 없었다.
그래서 빌렸다.
하루, 오픈카 하나.
비쌌지만, 그래도 해봤다.
재밌었다.
그리고 또, 레이싱 수업을 신청했다.
진짜 스포츠카. 진짜 트랙.
엑셀에 발만 살짝 얹어도 튀어나가는 반응,
굉음, 진동, 드리프트.
내가 원했던 건 바로 이런 거였구나.
그걸 느꼈다.
소유하지 않았지만,
앉아봤고, 달려봤고, 느껴봤다.
그 순간, 막연했던 꿈이
구체적인 계획이 되었다.
‘내가 앞으로 이걸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상상만이 아닌, 설계가 시작됐다.
반대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고작 이 정도 체험을 하기 위해 내 인생을 갈아서 돈을 마련해야 한다고? 시시한데?
게다가 차를 사면 보험도 들고, 레이싱 하면 타이어도 자주 갈아야 하고,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레이싱하다 사고 나면 보험도 안 된다던데…
흠….
혹시 난 스포츠카를 부유함과 풍요의 상징으로 좋아한 게 아닐까?
내가 속물로 느껴졌다. 그동안 진정한 자동차 레이싱을 좋아한다고 느꼈던 난,
레이싱보다는 이 정도 차를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의 과시를 원했던 게 아닐까?
재력의 과시라면 굳이 스포츠카가 아니어도 되잖아.
부동산, 명품, 화려한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럭셔리 카도 있고.
스포츠카에 대한 욕망은 조금 약해졌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그 속도감, 진동, 엔진음은 여전히 멋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그 차’인지,
‘스포츠카 레이서로서의 나’인지,
아니면
‘그 차를 몰 수 있는 풍요로운 나’인지.
경험은 나를 속이지 않았다.
허상보다 선명했고, 소유보다 정직했다.
그 정직한 감각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나 자신에 가까워졌다.
소유라는 큰 벽 앞에서 우리는 종종 기가 죽는다.
그럴 때일수록,
일단 살아보는 것.
소유한 것처럼 체험해 보는 것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기회를 준다.
우리는 종종 소유를 꿈꾸지만,
사실은 그 너머에 있는 어떤 감각을 원한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한다.
정말 그 물건이 필요한가,
아니면 그것을 통해 느끼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던 건가.
이 작은 용기가
소유라는 벽 뒤에 감춰졌던 본질을 열어준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통해
내 외연이, 내 세계가 조금 더 넓어졌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