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스포츠카를 갖고 싶었다

존재냐? 소유냐?

by Tord

돈은 없었다.

그래서 빌렸다.

하루, 오픈카 하나.

비쌌지만, 그래도 해봤다.

재밌었다.


그리고 또, 레이싱 수업을 신청했다.

진짜 스포츠카. 진짜 트랙.

엑셀에 발만 살짝 얹어도 튀어나가는 반응,

굉음, 진동, 드리프트.

내가 원했던 건 바로 이런 거였구나.

그걸 느꼈다.

소유하지 않았지만,

앉아봤고, 달려봤고, 느껴봤다.

그 순간, 막연했던 꿈이

구체적인 계획이 되었다.

‘내가 앞으로 이걸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상상만이 아닌, 설계가 시작됐다.


반대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고작 이 정도 체험을 하기 위해 내 인생을 갈아서 돈을 마련해야 한다고? 시시한데?

게다가 차를 사면 보험도 들고, 레이싱 하면 타이어도 자주 갈아야 하고,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레이싱하다 사고 나면 보험도 안 된다던데…


흠….

혹시 난 스포츠카를 부유함과 풍요의 상징으로 좋아한 게 아닐까?

내가 속물로 느껴졌다. 그동안 진정한 자동차 레이싱을 좋아한다고 느꼈던 난,

레이싱보다는 이 정도 차를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의 과시를 원했던 게 아닐까?

재력의 과시라면 굳이 스포츠카가 아니어도 되잖아.

부동산, 명품, 화려한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럭셔리 카도 있고.

스포츠카에 대한 욕망은 조금 약해졌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그 속도감, 진동, 엔진음은 여전히 멋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그 차’인지,


‘스포츠카 레이서로서의 나’인지,


아니면

‘그 차를 몰 수 있는 풍요로운 나’인지.


경험은 나를 속이지 않았다.

허상보다 선명했고, 소유보다 정직했다.

그 정직한 감각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나 자신에 가까워졌다.


소유라는 큰 벽 앞에서 우리는 종종 기가 죽는다.

그럴 때일수록,

일단 살아보는 것.

소유한 것처럼 체험해 보는 것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기회를 준다.

우리는 종종 소유를 꿈꾸지만,

사실은 그 너머에 있는 어떤 감각을 원한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한다.

정말 그 물건이 필요한가,

아니면 그것을 통해 느끼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던 건가.


이 작은 용기가

소유라는 벽 뒤에 감춰졌던 본질을 열어준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통해

내 외연이, 내 세계가 조금 더 넓어졌음을 느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