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술을 읽고 1편
에리히 프롬 덕분에 알게 되었다.
명상이 왜 필요한지.
왜 정신 집중이 자립이고,
자립이 사랑의 조건인지.
프롬은 말했다.
'홀로 있을 수 있는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후쿠자와 유키치의 말이 떠올랐다.
'자유란 스스로 밥벌이하는 것이다.'
프롬과 후쿠자와,
전혀 다른 시대와 장소에 살았지만,
결국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의존 없는 존재만이, 진짜를 시작할 수 있다.
프롬은 여기서 한 술 더 떴다.
'단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들었다.
'5분 명상도 못하는 주제에 사랑은 한다고?'
명상을 못한다는 건,
이미 당신의 정신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게 섹스든, 유행이든, TV든, 쇼핑, 쾌락, 쇼츠, 이미지 등등
당신의 뇌는, 당신 자신을 위해
단 한순간도 멈춰 있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당신이
어떻게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랑이란,
그에게 집중하는 것이고,
그를 경청하는 것이며,
그에게 전념하는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일이다.
그런데 퇴근하고 돌아와
방에 틀어박혀 게임 삼매경에 빠지고,
주말이면 취미에 쫓기듯 도망치고,
늘 뭔가를 소비하며 도피하는 삶을 살면서
'사랑한다고?'
심지어 상대가 말하는 와중에도 딴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뭐라고? 미안, 다시 말해줘."
나는 부끄러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에리히 프롬, 감사합니다.
지금이라도 명상하겠습니다.
아니, 최소한 상대의 말부터 집중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