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도덕은 누구의 것인가

– 조던피터슨 비판

by Tord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보는지는 종교적 믿음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일까? 그렇다! 종교적 믿음은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무신론자입니다만’ 하고 반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무신론자가 아니다.

(도스토옙스키의 걸작 <<죄와 벌>> 은 이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고심 끝에 무신론을 받아들이기로 한 뒤 선의로 합리화한 살인을 저지르고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무신론자가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당신이 무신론자처럼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의 행동은 마음속 깊이 내재한 믿음을 가장 정확히 반영한다.


– 조던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p.160


이 문장을 읽고, 나는 오래된 종교 서적을 펼친 것도, 중세의 설교문을 본 것도 아니었다.

2018년 출간된, 그 유명한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의 책이다.

놀란 건 그의 입장이 아니었다.


그 입장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신론자에게 “당신은 무신론자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이 단호함.

그리고 그 근거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가져오는 과감함.

나는 다시 『죄와 벌』을 꺼내 읽었다.

여전히 훌륭한 소설이었고, 여전히 그런 말은 없었다.

그의 문장은 한마디로 정리된다.


“신을 안 믿는다고? 너의 양심, 죄책감, 도덕성은 다 기독교에서 온 거야.

그러니까 너는 그냥 무의식적인 신앙인이야.”


이건 설명이 아니라 감금이다.

너의 존재를 “우리의 틀 안에 있다”라고 말로 봉인해 버리는 일방적인 선언.

나는 그가 여전히 이렇게 말한다는 게,

마치 누군가가 “지구는 평평하다”라고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문제는 그 말 자체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별로 놀라지 않는 이 분위기였다.

그게 더 무서웠다.

그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가면, 몇 가지 분명한 오류가 보인다.


하나는 선결문제요구의 오류.

애초에 “도덕은 기독교에서만 나올 수 있다”라고 전제한 뒤,

무신론자의 윤리는 결국 기독교의 부산물이라며 평가절하한다.


또 하나는 원천적 환원 오류.

어떤 생각이나 감정의 '출처'만 따져서, 그 내용 자체를 무효화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는 사람을 돕고 싶다”라고 말하면,

그 말이 기독교 문화에서 배운 거라고 해서

“그럼 그건 네 진심이 아니라, 문화가 시킨 거네.”

라고 말해버리는 식이다.

도덕은 ‘어디서 배웠느냐’보다, ‘어떻게 살아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는 출처만 보고 “그건 네 게 아니야”라고 말한다.

그건 논리가 아니라, 사람을 지우는 방식이다.


나는 그저,

그 말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는 태도 자체가

가장 낡고, 가장 무서운 믿음이라고 생각했다.

문득, 『먼 나라 이웃나라』라는 오래된 만화책 제목이 떠올랐다.

나는 서양을, 그리고 전 세계를 코앞에서 보고 있었다.

수많은 영화, 드라마, 음악, 유튜브, 쇼츠.

이미 우리는 같아졌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유행도 동시에 번지고, 감정도 거의 공유한다고 느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전혀 가깝지 않았다.

갑자기,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거대한 벽이 내 눈앞에 솟구치는 것 같았다.

나는 익숙하다고 믿었지만,


그건 벽 안에 있으면서 그 너머의 세상을 알고 있다고 믿었던,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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