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조선과의 이별

존재로 바라본다

by Tord


외할아버지. 이 말, 이제 쓰지 않겠다. 그냥 할아버지다. ‘외’라는 접두어 하나에 딸은 곁가지, 사위는 바깥사람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나는 그걸 자연스럽게 써왔고, 그 자연스러움이 조선의 잔재였다는 걸 이제 안다.

나는 조선을 보면 역겨움이 올라온다. 동시대의 일본은 무사라도 길렀다. 그런데 조선은? 아무 의미 없는 예송논쟁. 중국에 고개를 조아린 사대. 남녀차별, 노예제도, 어린이 학대. 남은 건 비루한 생산성.

나는 조선을 다 털었다고 생각했다.

제사? 그건 조상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장자 권력을 공식화하는 절차일 뿐이다. ‘누가 이 집안의 남자 권력을 계승했는가’를 선언하는 순간이다.

나이? 누가 나이를 물으면, 나는 예의 없다고 느낀다. 처음엔 여성에게만 묻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이를 묻는 건, 위계를 정하기 위한 의도다. 나이를 모르면 거리감이 생긴다. 그게 차라리 낫다.

나는 초등학생에게도 극존칭을 쓴다. 그냥, 나와 상대일 뿐이다. 지위도, 역할도, 위계도 없다. 존재만 있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아직도 ‘외할아버지’, ‘외갓집’이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니. 나는 반성한다.

그리고 오늘, 나는 아들의 이름에 ‘기둥 주(柱)’를 넣었다는 걸 자각했다. 처음엔 멋있다고 생각했다. 든든하고, 무게 있고, 중심이 되는 사람. 하지만 이제는 미안하다.

기둥은 버텨야 하는 존재다.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기댈 수도, 울 수도 없다.

나는 아들에게 역할을 먼저 줬다. 사랑이 아니라 기대를 건넸다. 기둥이 되라는 그 한 글자가, 조선의 잔재였다.

조선의 언어는 내 말투에 남아 있었고, 조선의 위계는 내 말속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것까지 턴다.

나는 조선과 작별한다. 아이에게 성별도, 순서도, 기대도 입히지 않는다. 딸과 아들은 같다. 첫째와 둘째도 같다. 그들은 누구의 기둥도 아니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 나는 조선을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아이를 존재로 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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