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롬에게 보내는 반론
프롬은 단순히 말투를 문제 삼은 게 아니었다. 그는 인간의 생각 자체가 ‘소유’의 틀 안에 갇혀버렸다고 봤다. 삶의 방식만이 아니라, 말하는 방식까지 소유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기쁘다”라고 말하지 않고 “기쁨이 있다”라고 말하며, “골치가 아프다” 대신 “골치 아픈 문제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프롬에게 이건 단지 말투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 방식이 뒤바뀐 신호였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문장은 단단했고, 내용은 무거웠다. 하지만 어느 지점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만났다.
책을 덮으며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느꼈던 경이로움이 떠올랐다. 미국인들의 언어 습관을 직접 체험해 보며, 나는 그들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절실히 느꼈다. 그들은 어쩌면 자신들이 그렇게 언어를 잘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지도 모른다. 모국어이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외국인으로서 영어를 배우기에, 그 언어의 구조적 강점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프롬의 지적처럼 “have”라는 동사는 자본주의적 소유 개념과 관련 있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오히려 천재적인 발상의 산물로 느껴졌다. 감정, 상태, 의무, 관계, 시제 등 거의 모든 문법 요소가 “have” 하나로 통일될 수 있다.
만약 프롬의 말처럼 자본주의가 소유 중심의 언어 습관을 만들어냈다면, 영어의 “have”는 비교적 최근에 확대된 표현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완료, 사역, 의무 표현 등 “have”의 핵심 용법은 이미 중세 영어 시기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뿌리는 고대 영어의 ‘habban’에까지 닿는다. 인간은 자본주의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have’를 통해 복잡한 상태와 관계, 행위를 압축해 표현하고 있었다.
결국 “have”는 자본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언어가 복잡한 사고를 최소한의 구조로 정리하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선택된 효율의 언어였다.
완료 시제도 마찬가지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단순히 ‘가지고 있다’는 말로 처리한다. “I have done it.”은 단순히 “했다”가 아니라, “그것을 끝마친 상태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have to”는 해야 할 일을 가진다는 표현이고, “have someone do something”은 사역이다. 이처럼 다양한 문법적 기능이 결국 하나의 소유 개념에서 파생된다.
완료형이 낯설고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have'를 소유 개념으로 단순화해 받아들인 후부터는 오히려 과거형보다 자주 쓰게 됐다. 이 경험은 영어라는 언어가 얼마나 경제적이고 구조적인지를 스스로 체험하게 만든 계기였다.
이 생각은 자연스럽게 한국어와의 비교로 이어졌다. 영어는 언제나 결론부터 말한다. 한국어는 반대로, 결론이 뒤로 밀린다. 회사 생활 중 가장 답답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후배가 급히 부탁할 일이 있으면서도, 정작 그 요청은 말미에야 꺼내는 경우가 많았다.
“선배님, 어제부터 계속 자료를 정리했는데요. 밤늦게까지 작업하고 오늘 아침에 열어보니 파일이 없더라고요. 너무 당황하고, 복구도 해봤는데…”
나는 속으로 ‘그래서?’를 외치며 참다 결국 말을 끊는다.
“지금 나한테 필요한 게 뭔데?”
“아, 선배님이 가지고 계신 백업 파일 좀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이처럼 본론이 뒤로 밀리는 대화는 듣는 사람을 숨 막히게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빨리빨리’의 원조는 한국이 아니라 서양일지도 모르겠다고.
프롬은 이런 언어 습관이 자본주의의 소유 개념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했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본다. 영어는 효율성과 간결함이라는 서양 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소유의 강박’이 아니라, 복잡한 생각을 빠르게 정리하고 표현하기 위한 전략적인 언어 설계다.
프롬은 뒤마레, 마르크스, 앵겔스와 마찬가지로, 동사가 명사로 대체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은 퇴보가 아니라 전략적 단순화였고, 오히려 언어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진화의 일환이었다. 영어는 단순한 소유의 언어가 아니라, 복잡한 사고와 감정을 최소한의 구조로 표현하려는 ‘생산성의 언어’였던 것이다.
결국, 프롬 선생님,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have”는 자본주의의 유물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가장 효율적인 언어적 해법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