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요즘은 기자들도 맞춤법을 틀린다.
심지어 AI가 실시간으로 교정해 주는 시대인데도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연히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어를 ‘느낌’으로만 쓰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어느 순간 한자 교육을 없앴다.
그리고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 살아간다.
게다가 이렇게 말한다.
“우린 한글이 있는데, 왜 한자를 배워야 하죠?”
그 말 자체가 문제다.
한국어는 한글이 아니다.
한글은 문자 체계고,
한국어는 언어 자체다.
말과 글자는 다르다.
생각해 보자.
‘문화’, ‘정치’, ‘경제’, ‘교육’, ‘과학’, ‘현상’, ‘분석’, ‘논리’, ‘사상’…
이 모든 단어는 한자어다.
그런데 그 뜻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언어는 단지 소리로만 작동한다.
어원을 모르니 문장의 깊이를 못 느낀다.
사유의 뿌리가 끊긴다.
한자를 안 배우면
한국어는 감정과 직관의 언어가 된다.
분석과 개념의 언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자를 포기할 거라면, 차라리 영어로 가자.
왜냐하면 영어는
개념어를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완성된 사유 도구이기 때문이다.
언어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The Language Instinct』에서
영어가 추상 개념을 구조화하는 데 최적화된 언어라고 분석했다.
우리는 지금
한자를 버렸고,
영어도 미뤘다.
결국 어정쩡한 소리 언어만 남긴 민족이 됐다.
한자 쓰자고 하면 꼭 나온다.
“그건 중국 거 아니냐고.”
그럼 묻고 싶다.
당신은 아라비아 숫자를 쓴다고 아라비아를 추종하는가?
숫자가 누구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식은 쓰는 사람이 주인이 된다.
한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쓰면 그건 우리 것이다.
언어는
사상이고, 철학이고, 생각의 뼈대다.
수학도, 과학도, 정치도, 경제도
모두 언어로 정의된다.
그러니
언어를 반쪽만 공부한다는 건,
세계를 반만 이해하겠다는 말이다.
그럴 수도 있다.
중국도 간자체로 단순화했다.
하지만 그들은
뜻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간자체는 구조를 줄인 것일 뿐, 의미를 아는 교육은 지속된다.
우리는 그와 다르다.
그냥 아예 학습을 중단했다.
한자를 버리려면 영어로 가야 한다.
영어로 가지 않을 거면, 한자를 다시 배워야 한다.
그게 싫다면,
우리는 영원히
의미 없이 떠다니는 소리만 쓰는 민족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