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한 사람은 집중하면 안 된다
“운동해 봐요. 땀 흘리면 다 괜찮아져요.”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운동하면, 생각이 멈춰요.”
많이들 이런 말을 한다. 운동을 하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잡념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그건 아주 가벼운 슬픔에만 해당된다. 정말 깊은 우울, 심연처럼 가라앉는 감정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자전거를 타러 산으로 갔다. 내가 좋아하는 산악자전거. 기분 전환이 될 줄 알았다.
죽을 뻔했다.
혼이 나간 채로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눈은 멍했고, 몸은 무감각했고,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 돌무더기와 나무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나는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나를 살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미 삶에 대한 미련도, 본능도, 그 순간엔 사라져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산악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깊은 우울에 빠진 사람은 집중하면 안 된다. 집중에는 방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집중은 파괴가 된다. 자전거는 익스트림할 뿐, 치유는 되지 않았다.
또다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걸어라.
걷기만이 정신의 심연에서 사람을 끌어올릴 수 있다. 걷는 데는 집중이 필요 없다. 기술도 필요 없다. 힘도, 의지도, 심지어 계획조차 필요 없다. 그저 걷기만 하면 된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노력조차 필요 없는 유일한 움직임이다.
매일 1시간 내외로 걸어라. 체력이 된다면 2~3시간도 괜찮다. 하지만 주의할 게 있다. 정신이 무너진 사람에게는 걷기도 위험할 수 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걷다 보면 수분 부족, 체력 고갈, 그리고 더위나 추위로 몸이 갑자기 나빠진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이쯤에서 멈춘다. 하지만 우울한 사람은 “이러다 죽겠지 뭐…” 하며 그대로 걷는다.
그러니 장시간 걸을 계획이라면 반드시 물을 챙겨라. 물만 있어도, 죽을 일은 없다.
사람 많은 곳은 피하라. 우울한 사람에겐 사람의 시선이 칼날처럼 느껴진다. 도시에 산다면 밤길을 걸어라. 서울 한복판도 밤이면 나만의 공간이 된다.
밤길도 사람이 많다면 야간 산행을 추천한다. 한국인들은 야간에 산을 잘 오르지 않는다. 그 시간, 그 공간, 그 어둠 안에서 비로소 나와 세계가 마주친다.
하지만 야간 산행은 극도로 우울한 사람에겐 위험하다. 처음부터는 절대 하지 마라. 우선 낮에 걷다가, 해 질 무렵쯤 걷는 데 익숙해진 뒤 랜턴을 챙겨 10분 정도 걷는 것부터 시작하라. 야간 산행은 걷기에 매우 익숙해졌을 때만 가능하다. 그전엔 그냥 또 다른 익스트림 스포츠일 뿐이다.
사람이 없는 시간, 사람이 없는 공간, 그곳에서 걷는다는 건 오롯이 나와 세계가 만나는 일이다. 촘촘히 빼곡해 보이는 이 세상 속에서 나는 늘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그 모든 공간이 나의 것이 된다.
아무도 없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없다.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 된다. 이 고독감은 고통이 아니라 안도다.
아, 나밖에 없구나. 다행이다. 그리고 내가 여기 있어도 괜찮구나. 아무도 없으니까.
나무 사이로, 풀들 사이로 다양한 풍경이 지나간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감동하지 않는다.
스쳐 지나가고, 또 스쳐 지나가고, 그저 숨을 쉬고, 헉헉대고, 편안해지고, 다시 부담스럽고, 또 헉헉댄다. 그러다 보면 문득 깨닫는다. 나는 걷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생각 없이 계속 걷는다. 정처 없이. 왜 걷는지도 모른 채. 그게 걷기의 장점이다.
지쳐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많은 걸 바라서는 안 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은 걷기밖에 없었다.
청소? 청소야말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청소는 나중에, 어느 정도 힘이 생겼을 때 시작했다.
걷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적당히 입고, 귀에 좋은 음악이나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이야기를 틀어놓고, 아무 데나 발 닿는 곳으로 천천히 간다.
시작도 끝도 없는 것처럼 걷는다. 어차피 난 가야 할 곳도 없으니까.
산이 멋져 보이면 저기로 간다. 들판에서 흙을 밟고 싶으면 거기로 간다. 원하는 풍경은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져 간다.
회복은 위대한 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작은 일을 통해 가능해진다.
심연에 빠진 나를 조금씩 끌어올려준 건 바로 걷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