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자녀를 품고 산다는 것,
너와 나의 거리는 어디쯤일까?
“엄마 정말 속상해. 시험을 너무 못 쳤어. 어제 공부했는데…”
이 말을 듣고 아이를 붙잡고 다음 시험을 위한 연습문제를 몇 번이고 풀렸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게 아이에 대한 사랑이었는지, 나의 자존심이었는지…
답은 뻔히 보이지만
“다 너를 위해 이러는 거야”로 마무리 짓기로 하자.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와 내가 동기화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친구와 다투고 올 때도, 속상한 일이 있을 때도, 또 기쁜 일이 있을 때도 동기화가 되는 경험을 자주 한다.
아이가 어린 시절엔 엄마가 전부다.
엄마가 아이의 세상이고 엄마가 아이의 존재 이유이다.
그 시절엔 아이와의 동기화가 필수적이었다.
어느새 그 조그맣던 아이가 자라
나와 눈높이가 같아지는 시기가 되니
떨어져 있는 시간만큼 애틋함이 생기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가 하루는 친구집에서 자고 온단다.
걱정하는 마음만큼 애틋함이 무럭무럭 ㅇThe 붕장어 있는 내가 아이러니했다.
‘돌아오면 잘해줘야지. 상냥한 엄마가 되어줘야지.’ 라며 되뇌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몸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마음 역시 평온함을 찾게 되는 걸까.
“자녀는 내 소유물이 아닌 귀한 손님으로 대하라. “ 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손님이라,,,
그러고 보면 귀한 손님과 나의 관계는 좋을 수밖에 없다.
맛있는 걸 준비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준비해 주고, 극진히 대접하니
불만이 있을 수가 없겠지.
내 아이는 내가 아니다. (나도 안다. 너무 잘 안다.)
나와 동일시하며 나와의 거리를 아주 가깝게 둘수록
아이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엄마가 되어보면,
남의 아이만큼 ‘세상 긍정적인 요소’를 모두 지닌 아이가 없다.
그렇듯,
내 아이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남의 아이 보듯 바라보면(?)
사춘기 역시 평온하게 지나가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