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공부 잘하는 아이는 엄마의 축복

사춘기 자녀를 품고 사는 것 2

by 소담




‘넌 공부하라는 소리 한 번도 안 해봤어. 샘이 있어서 스스로 알아서 했어.‘

친정엄마가 늘 하시던 말씀이셨다.

나도 그랬고, 남편도 그랬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라(승부욕이 강해서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던 학창 시절을 보냈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의 아이들도 스스로 공부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착각이라는 걸 알게 된 요즘,) 멘붕이라는 단어를 이럴 때 사용하는 걸까,



책상에는 오래 앉아있는다. (그 목적이 공부가 아니여서가 문제지..)

사춘기가 되니, 자신의 방에서 도통 나오질 않는다.

방이 너무 좋다나 뭐라나;;;;



초등학교 고학년 때 국제학교로 옮기다 보니

아무래도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교과공부가 힘들 거 같은데

본인은 아무렇지 않나 보다.



애달픈 건 오로지 엄마 몫,

아이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공부가 아니면 일찌감치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도 인생의 혜안이야‘라며

아이가 좋아할 말을 던지는데….



잔소리와 악역은 오로지 엄마 몫이다.

오은영 선생님이 그러셨나?

‘아이들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가르쳐야 한다.‘ 이 말을 되뇌고 또 되뇌어서,

같은 말만 무한 반복하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된 기분이다.



아이와 다툼의 주제와 원인은 매일 같다.

대부분이 아이의 짜증이고, 대부분이 엄마의 잔소리다.

창과 방패 같은 다툼이 격일로 이어지고 있는 요즘,

(매일이 아니라 다행인 건가,,)




아이가 어릴 땐 학습이 그리 크게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자연에서 뛰어놀고,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우리 부부의 육아 방식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이의 자기 주도적 학습 시기를 놓치게 된 게.



나의 어린 시절과 비추어볼 때면

당연히 학생은 공부를 해야 했고, (지기 싫어하니) 당연히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고,

좋은 성적이 나오니 뿌듯해서 열심히 했다. (나름 인과관계에 충실했던 시절이었던 듯)

물론 지금 아이들의 환경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은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과, 그로 인한 유해환경이 너무 많아졌다.



그 환경을 자신의 의지로 이겨내고 ‘해야 할 것’을 먼저 하고

’하고 싶은 것‘을 나중으로 미뤄 둔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은 아닐 거다.

마음으론 이해하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 어쩔 수 없는 어른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스스로 공부를 하는 아이가 자녀인 것도 행복인데,

스스로 공부를 해서 결과마저 좋은 아이가 나의 자녀인 것은 정말 축복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나의 아이는 해맑게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게 ‘매우 안타깝지만’

‘나는 엄마니까 ‘ 전장에 뛰어드는 비장한 각오와 창을 들고

오늘도 아이와의 타협을 준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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