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좋아하세요?

오감 기억법

by 김하늬

아쉽게 전공으로까지 살리진 못했지만 피아노를 오래 쳤었다. 그 시절 작은 방 안에서 동그라미 열개를 그려놓고 하나씩 빗금 쳐 나가는 것도 재밌었다. 가끔은 빗금만 쳐놓고 딴짓을 하기도 했지만.


피아노 소리가 좋았다. 가볍기도 하면서 묵직하기도 한 소리가 어린 마음에도 감동으로 다가왔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날은 베토벤의 비창을 쳤다. 그 소리로 다시 안정을 찾곤 했다. 소리가 주는 기억력은 단편적인 기억보다 확실히 더 생생하게 남아있다.

언젠가 피아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피아노가 아니더라도 악기 혹은 소리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의무적으로 다니던 음악학원들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도 잊고 살았다. 피아노 소리도, 악기 소리도, 아름다운 소리에 대해 잊고 살았다.




뚜렷한 취향을 가진 성인들이 선택적 만남을 하다 보니 의도하지 않았지만 피아노를 치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나타나기 시작했다. 베토벤의 비창을 즐겨 쳤던 내가 이제는 젓가락 행진곡밖에 못 치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내는 피아노 소리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소리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누군가에겐 재미없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쉴 틈 없이 떠들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같은 피아노 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이 웃는다. 누구보다 생생한 기억으로 남겠지. 오감을 통한 기억력이 주는 선물이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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