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주일치 삶

집에서 일을 하는 시대라니

by 김하늬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사실 집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글쓰기, 책 읽기, 강의 준비하기, 자료 정리.. 시공간 제약을 덜 받는 일이지만 유독 집에선 어떤 작업도 잘 풀리지 않는다. 똑같이 자리에 앉아서 하면 되는 일인데 집에서는 할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역시 밖이다. 집에서 작업이 안 되는 이유들이 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아무리 좋은 찻잔에 향긋한 커피가 준비되어도 그 모든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내가 해야 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일을 해야 한다. 일을 끝내는 순간에도 일을 해야 한다. 일은 일로써 마무리 짓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집에 있으면 일에 대한 경계선이 모호해진다.

그 경계선이 무너지는 지점이 집안일이다. 집에 있으면 온갖 집안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 일이 없을 땐 꼭 눈에 안 들어오던 집안일이 이상하리만큼 눈에 띈다. 급한 업무를 처리할 때는 집안일을 애써 거부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할 때는 집안일과 업무 사이의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먼저 치우고 할까?" 그렇게 업무는 밀려버린다.


무엇보다 우리는 여태껏 집을 휴식공간으로 여겨왔다. 일을 마친 다음 쉬는 공간.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파는 중요한 가구로서 자리매김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거실의 모습은 티브이와 소파가 덩그러니 자리 잡은 모습이다. 요 최근 티브이를 없애는 집이 늘어나면서 소파와 티브이 자리를 대신하여 책장과 테이블이 거실을 차지하기도 한다. 환경이 변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 집은 여전히 휴식공간에 가깝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변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휴식공간으로써의 집이 일터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집의 기능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나부터 밖에서 하던 강의를 화상강의로 대체하면서 집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카페에서 진행했던 대부분의 미팅들도 각자의 집에서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으로 만나고 있다.

방금까지 집안일하고, 방금까지 넷플릭스를 보다가 5분 만에 사회인 모드로 변경된다. 그것도 무려 집에서!




집에서 못하던 일을 집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끌어와야 한다. 분명 얼마 전까지 할 수 없던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람이 스스로 변하는 일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오죽하면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거실, 부엌, 방, 베란다는 이런 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우리 집만의 사용설명서를 만들어본다. 고정적이지 않을수록 좋다. 흔히 부엌은 요리하고 식사하는 공간이었다면 우리 집에선 요리하고, 식사하고, 같이 책을 보기도 하고, 때론 화상회의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카멜레온같이 변화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미 많은 집들이 카멜레온 형태의 공간 사용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점은 함께 사는 사람들 간의 합의다. 여태껏 가족만 공유하던 공간이 언제든 타인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더 이상 집은 단순히 휴식하는 공간일 수가 없다. 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중심에 있다.




집에서 일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개인적이면서도 개인적 일 수 없는 곳이 집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적응해야 한다. 적응하는 인간. 호모적응데우스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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