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월동준비
갑자기 추워졌다. 이번 겨울은 꽤 따뜻하다고 느끼는 찰나 영하로 뚝 떨어졌다. 며칠 전까진 아무리 추워도 차를 타면 온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오늘 아침 운동을 가기 위해 차에 탄 순간 냉기가 느껴졌다. 차가운 시트와 핸들을 잡으면서 계기판을 본다. "영하 1도"
갑자기 겨울이 왔다. 늘 그렇듯 나름 월동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코앞에 와야 준비를 시작한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각자의 이유가 있다. 곰과 같은 포유류는 먹이가 없어서 에너지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겨울잠을 잔다. 뱀과 같은 파충류는 온도를 지키기 위해 겨울잠을 잔다. 인간은 겨울잠을 자진 않지만 겨울의 시기에 준비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봄을 준비하는 자세.
봄이 오면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다.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 우리는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겨울엔 몸을 사리되 마음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겨울을 대하는 자세를 생각하면서 <개미와 베짱이>가 떠올랐다. 봄부터 가을까지 겨울을 위해 열심히 사는 개미와 순간을 즐기며 미래준비를 못하는 베짱이를 보면서 '어떤 삶이 옳은 것인가' 생각한다. 삶은 정답이 존재하지 않아서 사람마다 다른 해답을 가지면 된다. 개미의 삶이든 베짱이의 삶이든 그 둘의 삶을 섞어놓든 가장 나한테 자연스러운 삶을 찾으면 된다.
나는 개미같이 살고 있지만 실제론 베짱이에 가깝다. 남에게 보이는 삶은 그 누구보다 부지런히 살고 있다. 나 스스로도 포장력이 강한 사람인 건 인정한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그 누구보다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틈새시간을 이용해서 운동을 한다. 누군가에겐 운동까지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내가 원해서 시작한 운동은 시간이 허용되는 한 그 시간을 누구보다 즐기고 있다.
엄마와 함께 요리를 한다. 사회생활이라는 핑계로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힘들어졌는데 사업을 한다는 핑계로 엄마와 요리를 한다. 찹쌀케이크가 구워지는 시간 동안 나는 사업설명을 한다. 그리고 완성된 찹쌀케이크를 함께 먹는다. 아, 행복하다!
글을 쓴다. 시간을 내서 한 자리에 진득하게 앉아 글을 쓴다. 글을 쓰는 행위는 굉장히 생산적인 일이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내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진다. 엄청난 자기 치유의 시간이다.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울 만큼 여유로운 삶이 아닐까.
시대에 따라 인기 있는 캐릭터는 달라진다. 초고속 성장 시대를 살아온 우리 부모님 세대에선 개미의 삶이 당연했다. 어느 정도 먹고살만해진 우리 세대에선 오히려 베짱이의 삶을 지지한다. 우리 아이들 세대에선 어떤 삶을 원할까?
나의 겨울은 개미처럼 산 시간 덕분에 나만의 방식으로 여유를 즐기고 있다. 사실 틈틈이 베짱이 같이 그 순간 하고 싶은 일은 하나씩 하고 산다. 책 읽고, 운동하고, 사람들 만나서 맛있는 커피와 빵을 먹으면서.
그래서일까. 나의 겨울은 자동차 계기판에 적힌 영하 1도만큼 춥지 않다. 약간의 온기와 냉기가 섞여 너무 따뜻하진 않아도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인 나만의 온도, 나만의 겨울을 지내고 있다. 겨울이라고 겨울잠을 자지도 않고 여름이라고 죽어라 일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하게 일상에서 비움을 실천하고, 일상에서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가진다. 개미 모드와 베짱이 모드를 스스로 온오프 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질문한다.
"오늘 할 일을 미루진 않았겠지? 힘든 일이든, 즐거운 일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