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시간을 사용하나요, 타인의 시간 속에 살아가나요
물리적인 시간이 있다. 24시간. 이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24시간의 의미가 다르다. 누군가에겐 꽉꽉 눌러 담은 24시간이, 누군가에겐 흘러가는 24시간이 존재한다.
부자에게 48시간, 가난한 사람에게 12시간이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만큼은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물리적으로는 그렇다. 당연히 평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귀하게 쓰지 않는 것이 시간, 공기, 물 같은 것들이다. 지천으로 널려있어서 소중한지 모른다.
나도 그랬다. 그러던 중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할까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내가 쓰는 시간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내가 쓰는 시간들의 합이 결국 내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주로 어디에 시간을 쓰고 있을까 확인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sns에 소비하고 있었다. 내가 생산하는 sns가 아닌 주로 소비하는 쪽으로. 의미 없이 스크롤바를 내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소비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우울해졌다. 나름 열심히 산다고 자부했던 내가 다른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좌절감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서 우리가 불안을 느낄 때는 엄청난 셀럽이나 공인들 삶이 아닌 내 주변인 삶이 좋아 보일 때 더 큰 불안감을 느낀다고 한다. 반대로 생각했다. 그럼 내 주변 누군가는 내 삶을 통해 불안을 느낄 수도 있겠구나!
나 역시 타인의 삶을 통해 좌절감을 느끼는데 나를 통해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존재하겠구나.
내가 보여주는 삶이 100% 나는 아니다. 그중에 숨기고 싶고 부끄러운 것들은 업로드하지 않는다. 나부터 좋아 보이는 것 위주로 나를 포장한다. 이 부분을 인정한 순간 sns로 소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그 시간을 대신해서 책을 읽고, 경제기사를 보기로 했다. 같은 시간이지만 다르게 소비하고 있다. 이 시간들을 지나고 보면 나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지금과 같을 수도 있고 지금보다 더 나아졌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타인의 시간에 소비되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나도 모르게 타인의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늘 우울하지만 내 인생을 나로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