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실화라서, 내가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코로나로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는 특명이 내려졌다. 먹고 누워있기를 반복하다 영화를 보기로 한다. <나 홀로 집에>에는 볼만큼 봤기에 다른 영화가 필요했다. 따뜻한 내용이면서 여운이 남았으면 좋겠다. 그러자 <노트북>이 떠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영화라는데 왜 난 한 번도 보지 않았던 거지? 따뜻한 물을 가득 받아두고 욕조에 몸을 맡긴 뒤 <노트북>을 봤다.
난 비록 죽으면 쉽게 잊힐 평범한 사람이지라도
영혼을 바쳐 평생 한 여자를 사랑했으니 내 인생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이 대사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영화로 불리는 대목이 아닐까 싶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원하고, 조금 크면 친구들의 사랑을 바라고, 더 크면 이성 간 뜨거운 사랑을 바란다. 그러니깐 사랑은 우리 삶에서 필수 불가결하다.
한 사람과 죽을 때까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로맨스라기보다 판타지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을 바쳐 평생 한 여자를 사랑했으니" 이 부분은 대리만족을 불러일으킨다. 혹은 나도 어쩌면 저런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토록 원하면서 왜 우리는 한 사람과 영혼을 바치는 사랑을 할 수 없을까..
마음이라는 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하기 때문일까?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항상 좋을 순 없다. 그런데 주인공인 노아와 앨리는 언제나 좋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 시작한다.
우리 예전에도 이렇게 싸웠잖아. 매일 이래야 할지도 몰라.
싸우는 과정도 날것 그대로 싸운다. 정말 있는 그대로.
격식 있는 삶에 익숙했던 앨리는 어떤 틀에 끼여져 살고 있었다. 그런 앨리는 노아와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러웠다. 둘은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싸울 수 있다고 인정했다. 매일 피 터지게 싸우는 한이 있어도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하지만 현실은 연인 간 혹은 부부간 갈등 상황을 최대한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 사랑과 갈등은 반비례관계로 생각한다. 사랑하니까 너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니까 싸울 일이 없어진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가정.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없다. 꾸며진 내가 평생 함께 할 수 없기에 날것의 내가 나오는 순간 그 둘의 관계는 정해진다. 계속 갈 수 있을지 말지.
한여름 로맨스는 갖가지 이유로 끝이 나죠. 하지만 나중에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별똥별 같은 사랑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눈부신 별빛과 같죠.
잠깐 영원성을 발하다가 눈 깜짝할 새 사라지니까.
노아와 앨리가 경험한 평생의 사랑과 반대되는 한여름의 로맨스. 순간의 반짝거리는 감정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에 우리는 늘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믿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 사랑에 스스로 우울감을 느낀다. 어떤 이는 다시 한번 더 영원한 사랑을 찾아 나선다.
평생 한 사람과 찐 사랑을 하고 싶다고 느끼지만 이미 그러지 못한 우리들이 이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아니면 혹시 남은 삶에선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대리 만족한다.
오늘도 사랑에 실패했거나, 사랑을 하고 싶은 우리는 노아와 앨리를 보면서 진짜 사랑을 꿈꾼다.
분명 로맨스가 아니라 판타지물인데, 실화라니! 내가 저 커플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사랑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