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게 뭐였더라?

내 지분을 늘리는 방법

by 김하늬

엄마가 되고 내 세계는 점점 좁아진다. 좁아진 내 세계에는 아이의 지분이 점점 커져간다. 태어나서 나 말고 다른 인간을 이토록 사랑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이를 보면서 그 힘든 육아기간을 견뎌낸다. 생존의 기간이다. 아이도 엄마인 나도 생존의 기간이다. 아이는 생물학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자기 몸하나 가누지 못하다가 어느새 스스로 걷고 뛸 수 있다. 엄마는 심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제껏 내 마음대로 살 던 나는 사라지고 온전히 아이를 위한 시간으로 희생하고 견뎌내야 한다.


엄마가 되기 전에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잘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본 적이 많지 않다. 그런 상태에서 아이를 키우게 되니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잘하는지 진짜 잊혀 버린다. 그렇게 나는 사라진다.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 우울증은 한 번쯤 겪어볼 정도로 감기 같은 존재다. 2040대 엄마들은 비교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온 세대다.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갔었다. 그런데 육아를 통해 내 중심에서 아이 중심으로 축이 변하는 순간 우리는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

나 역시 육아 우울증이 심한 사람이었다. 집에서 아이만 키우는 게 꽤 적성에 맞지 않았다. 밖에서 예쁘게 옷을 입고, 손톱은 늘 색깔이 칠해져 있고, 머리는 늘 손질되어있는 나와 비슷한 또래 여성들을 보면서 더 큰 우울감을 느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저곳인데 나는 왜 이렇게 후줄근한 옷을 입고 제때 미용실 한번 못 가면서 아이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할까? 라면서 매일 한탄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누구보다 긍정적이었던 내가 누구보다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있었다. 스스로 그 사실을 깨닫고 남과 비교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단지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질문이 시작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였더라?
내가 잘하는 게 뭐였더라?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물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꽤 소소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화창한 날에 초코 크로와상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생산적인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험담이 아니라 그냥 책이나 음악 이야기, 여행 이야기 같이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대화를 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안 순간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서모임을 찾다가 주관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 시작하자 우울감은 어느새 사라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향초를 틀어두고 반신욕을 하는 것, 하늘이 맑은 날 바다를 끼고 드라이브를 하는 것, 피곤할 땐 그냥 넷플릭스를 하루 종일 보는 것... 아이가 있다고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내 마음가짐이었다. 아이 때문에 할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수집하고 쿠키 꺼내먹듯이 하나씩 했더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잘하는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독서모임 진행을 주로 했었는데 사람들을 모아 리드를 하는 것이 힘들지 않고 재밌었다. 여러 분야의 책을 편독 없이 읽는 것도 잘하는 일이었다. 읽은 책을 다시 내 식으로 정리하는 것도 종종 잘했다. 뭐 하나 잘하는 게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나는 생각보다 잘하는 게 많았다.

자연스럽게 모임을 시작했고, 모임이 소그룹 강의가 되었고, 소그룹 강의는 대그룹 강의로 변했고, 지금은 전국구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육아의 기간은 그 누구보다 힘든 기간이라는 걸 깊이 알고 있다. 나 역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인내의 시간을 보냈고 우울의 시기를 겪었다. 그때 내가 우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를 잘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심지어 친정부모님이 근처에 있었음에도 우울증이 왔다. 그런데 혼자서 육아를 견뎌내는 독박 육아맘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그럼에도 그 시기를 잘 헤쳐나가는 엄마들도 있다. 10년을 지나 어떤 엄마는 우울하고, 어떤 엄마는 즐겁게 육아를 하는 걸까를 객관적으로 지켜보니 내 생활이 '1'이라도 있는 엄마들은 그나마 육아기간을 건강하게 보내고 있었다.


몸이 힘들지라도 워킹맘이 독박 육아 맘보다 나은 이유는 여기 있다. 시간이 도저히 허락되지 않는다면 주말이라도 아빠에게 1시간이라도 아이를 맡겨두고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해봤으면 좋겠다. 그 시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어야 한다. 혼자 책을 읽거나 혼자 영화를 보거나 혼자 미용실에 가거나..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들을 마일리지 쌓듯 모아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쓰는 돈을 절대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생기면 한정적 비 용안에서 아이에게 올인하는 경우가 많다. 옷을 사도 아이 옷만 산다. 간식도 아이 간식만 산다. 1순위가 내가 아니라 아이가 절대적인 순간 우울증은 찾아온다. 5번을 아이를 위한 시간 혹은 돈을 썼다면 1번은 나를 위한 시간과 돈을 쓰자. 내가 좋아하는 책도 사보고, 가끔은 파마도 하면서 나한테도 선물을 주는 삶이 필요하다.


그 무엇이 됐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부터 단 5분이라도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한 번만 써본다. 사실 별거 아니다. 세상의 축이 바뀌어 감히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나씩 해본다.

그렇게 나는 다시 행복해진다. 진짜로. 제발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글 옆에 한 번 적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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