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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동하는아저씨 Jun 17. 2020

예. 보험 처리하세요.

“예. 대리기사님이죠?”    


성인이 되고 술자리가 많아졌다. “캬~ 이 맛이지.”라며 쭉쭉 들이켜는 사람들 보면 도대체 뭐가 맛있다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쓰기만 하지. 아무리 비싸고 좋은 술이라 하더라도 나에겐 그저 다 똑같은 술이요, 몇 잔 들이켜면 초점 잃은 동태 눈깔이 되고, 바늘로 한 번 콕 찌르면 피가 쭉~ 나올 거 같이 온몸에 피는 얼굴로 몰린다. 그래서인지 인생에 있어 스스로 술을 찾아 마셔본 적은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는데, 그럴 땐 항상 만취가 된다. 뭐 어쩌겠나. 어른이 따라주면 마셔야지. 혹여나 어른들에게 실수라도 할까 꾸역꾸역 잡았던 정신 줄은, 집으로 가야겠다고 하는 순간 놓아버린다.   


“돼. 뤼. 귀. 솨. 늼. 조쉼히 가주세요.”    

   

기사님은 내 말을 들은 둥 마는 둥 거침없이 속력을 올린다. ‘이 사람이 바쁜가, 아니면 내가 취했다고 막 운전을 하는가.’ 좀 아니 꼬았지만 안전하게 집까지 바래다주니 참는다. 안심할 틈도 없이 얼마 가지 않아 사고가 났다. ‘뿌지직 퍽!’ 우회전을 하며 차가 인도 위로 올라간 것이다. 이러려고 대리기사님을 불렀나, 취했던 정신도 말짱히 돌아온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하차하면서 사고 난 위치와 부서진 부위 사진을 찍는다.     


“아저씨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아~진짜 조심 좀 하시지 이거 어떻게 하실 건데요.”    


“저도 운전경력 15년이 넘는데 이런 사고는 처음입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오늘은 늦었으니 집에 가고 내일 보험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기사님은 연신 굽신거리며 고개를 숙인다.    

  

다음날 차를 확인해보니 타이어는 찢어져 있고, 휠은 움푹 들어가 있고, 하부도 찌그러져있다. (남자라면 공감할 것이다. 차가 다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자기 자식 어디 다친 것 마냥 내 맘도 함께 찢어진다. 차는 정비소로 옮겨지고 며칠 뒤 차는 말끔하게 고쳐져 나왔다. “아이고 내 새끼” 애지중지 하며 한동안 조심히 타고 다닌다. 또 한 번 회식 약속이 잡히고, 마찬가지 대리기사님을 부른다. 사고를 한번 겪었던 터라 차에 탑승하기 전에 기사님에게 정중히 말한다.    


“기사님 저번에 다른 기사님이 제 차 사고 냈으니까 조심히 운전해 주세요.”    


“에이~걱정 마세요. 그 사람 왜 그랬지?”    

  

안심하고 올라타는 순간 퍽! (순간 내 가슴도 함께 퍽!) 기사님이 문을 힘껏 열어 문짝을 찌그러뜨린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지만 “보험 처리하세요.”라며 또다시 체념한다. 사고 내지 않기 위해 대리기사님을 불렀는데, 반대로 대리기사님들이 사고를 낸다. 내 차에 마가 낀 것일까. 미신을 믿지 않지만 정비소에 들어갔다 온 차에 막걸리를 뿌리며 나름 대로에 의식을 치른다. 의식은 개뿔. 그 이후 대리기사님들은 두 번이나 더 사고를 낸다. 사고와 함께 내 속도 뒤집어진다. “네~ 보험 처리하세요.”     

  



기사님들에게 화를 낼만도 한데 한발 물러서서 참는다. 불이익을 당했는데도 참는 거보면 ‘난 호구인가’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만난 기사님들과 대화를 해보니 참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나이가 많고 직장에서 해고당하거나, 하루 벌어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 당장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도 각자 사연을 들을 때마다 숙연해진다.     

   

꼭 기부금을 내야만 옳은 행위일까?  

한 번 참음으로써 그들의 삶이 행복해진다면 그것이 좋은 기부가 아닐까 한다.     

하.. 절이라도 들어가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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