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불만을 들어내는 인터넷 기사를 보면 어김없이 서로를 비판하는, 댓글들을 볼 수 있다.
정확히 이런 내용의 댓글은 비슷한 댓글을 예시로 적어보았다.
1. “비정규직 처우개선하라! 정규직과 똑같은 일하는데 차별대우가 너무 심하다.”(비정규직)
2. “선생님도 정말 힘들다. 아이들 가르치기 예전 같지 않다. 공무원은 놀고먹는다고 생각하지 마라!”(정규직, 공무원)
3. “힘들면 때려치워라. 그 자리도 못 들어가서 안달 난 사람들 많으니까.”(비판 댓글)
비정규직 기사가 나면, 누군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짐작을 할 수 있다. 공무원이 반박 댓글을 적은 듯한 3번 내용의 댓글들이 수두룩하고, 2번. 정규직, 공무원의 기사가 올라오면 비정규직인 사람이 적은 듯한 3번의 내용의 댓글들로 서로를 비판한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서로를 존중해주면 좋겠다만, 아직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에 대한 예우는 많이 부족하다. 물론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 봐서 정규직 된 사람들에겐 박수 쳐줄 일이다. 하지만 뉴스만 봐도 알 수 있듯 불이익은 비정규직이고, 그 많고 많은 사망사고도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대부분이다.
지금 나는 비정규직에서 ‘무기 계약직’으로 처우개선되었다. 비정규직이었던 시절 이야기다. 아 참! 나는 학교운동부 지도자다.
지도자 생활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다. 지금은 처우개선이 되어 어느 정도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전에는 파리 목숨이었다. 위 양반들의 무언의 압박감을 견디며 선수들을 지도했다. 양반들은 선수들의 성적으로 인해 승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성적을 내야만 한다는, 그 무거운 중압감은 오롯이 지도자들의 몫이다. 그 중압감은 고스란히 선수들에게 되돌아가기도 하며, 시대와 맞지 않은 스파르타식 훈련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1선에서 선수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에게 좋은 점이라곤 뭐가있을까? 좋은 것이라고 해봐야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가 전국 상위권에 입상했다는 것과 포상금 딸랑 몇 푼이 끝이다. 명예? 그딴 건 없다. 우수한 성적을 낸 지도자라면 그 한 해는 편안한 한 해가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물론 선수들을 돈으로 환산은 하지 않는다. 구시대적인 정책이 이렇게 만들었을 뿐.
그렇다면 좋은 선수들은 어디서부터 나오겠는가? 처음부터 상당한 인재가 만들어질까? 아쉽게도 운동선수는 그렇지 못하다. 초, 중, 고, 대학교를 거쳐야만 좋은 인재가 나온다. 이 작은 나라에서 전 세계가 인정하는 스포츠 인재가 나오는 대도 학교운동부 지도자에게는 눈곱만 한 대우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운동부가 생기고 불합리한 대우가 40여 년간 이어지며, 이제는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한 지도자들이 몇 있었지만 쉽게 바뀌지 않았다.
용기 있는 지도자가 홀로 교육청에 들어가서 목소리를 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개인적인 면담은 받아주기 어려우니 어떠한 단체를 통해 정식 면담요청을 하라고 한다. 그렇게 노동조합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어 도움을 요청하고, 혼자가 아닌 지도자들에게 불합리한 처우를 설명하며 절실하게 호소를 한다.
“이제는 우리 지도자 여러분도 바뀌셔야 됩니다. 언제까지 위 사람들 눈치 보며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야 되는! 이런 불합리한 생활을 이어 나가겠습니까. 저를 위해서라도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지도자님들 단합해야 됩니다. 최소한 우리 후배, 제자들에게는 좋은 환경을 물려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지도자들은 하나 둘 노동조합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고, 가입하기 이르렀다. 꼭 이러한 단체에 가입을 해야만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물 흐르듯 분위기를 타고 어떨 결에 가입을 했다. 막상 가입은 했지만 노조 활동에 대한 거부감이 없지는 않았다. TV에서 단체 시위하는 걸 보며 탐탁지 않게 여겼는데, 지금 내가 하고 있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총을 맞아가며 ‘투쟁’을 외치는 게 얼마나 부끄럽고 어색하던지,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 활동으로 인해 차별 없는 사회,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 없기를 바라며 참여하게 된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단체 활동을 통해 그나마 처우가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바꿔야 될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저 내 할 일만 열심히 하면 사회가 잘 돌아갈 줄 알았던 나의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목소리 내지 않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도 단체 활동을 통해 배운다. 쪽수엔 장사 없다고, 일단 단체로 밀어붙이는 게 최고더라. 특히! 선거철이 다가오면 그 어떤 정치인들도 이렇게 수많은 인원은 무시를 할 수가 없다. 왜 그럴까? 당선이 되려면 많은 표가 필요하니까.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다. 나도 살고 너도 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