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에 대하여
어떤 의미.
거기에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퍽 그런 듯하다. 아무튼 의미를 찾다가 점점 라는 나에게 의미가 되어 갔다. 라에게도 나는 하나의 의미가 되어 가는 듯했다. 이렇게 어중떠중 대충 만나 언제 다시 보지 않아도 무방할 것 같았던 사이가 깊어지고 그렇게 4계절을 함께 했다. 라는 다소 충동적인 인간이었고 겁이 많았다. 겁을 감추기 위해서 허리춤에 총을 차고 다니는 사람 같았다.
이 전 글에 다 적어내지 못했지만, 라는 라의 옥탑방에서 술을 마실 때 자신의 죽은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입은 웃었고 눈은 울고 있었다. 실제로 울었다는 소리는 아니다만. "이 얘기 안 꺼내려고 하는데 술만 마시면 하게 되네." 나는 그냥 끄덕였다. 친구는 뇌가 녹아가며 죽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일정부분 뇌가 녹아 변형되는 것을 삶의 의지로 이겨내던 사람과 자신만의 가상을 만들어 그 안의 목소리에 잠겨 죽은 사람을 떠올렸다. 하나는 나의 첫 사랑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의 혈육. 친 언니.
그 날 나는 나도 그런 경험 있다고 떠벌거리지 않았다. 그냥 라와 나의 인생에서 목도한 죽음들에 애도했다. 묵념. 한 5분 쯤. 감정을 꾸역꾸역 밀어넣느라 여념이 없었지. 드러내는 건 괜찮다. 그러나 드러나는 건 원치 않았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남자의 집에서 친구의 이야기에 공감하겠다며 그 죽음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이 그랬다.
그래서 안심했던 걸까. 라가 나를 이해할 것이라는 순진한 착각을 해버렸다. 3월 언니의 기일이 가까워오면서 마음이 심란했다. 올해도 코로나로 찾아갈 수 없구나. 코로나가 염려된다며 기차표는 끊지 못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만나는 구나. 잠깐 너무나 큰 죄책감이 나를 감싸 구름 위에 앉혀뒀다. 구름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상에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
라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를 언니에게 인도했다. 그는 타지에서 차를 끌고 올라와 서울에 있는 나를 픽업해 장성까지 실어 날랐다. 나를 픽업해준 그는 언니의 소나무에 큰 절을 올렸고, 나는 집에 돌아와 라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이 일련의 모든 행위들이 죄스러웠다. 죄책과 자학과 자조가 뒤섞인 하루였다. 품에 안았다가, 품에 안겼다가. 나는 이 때도 함구했었다. 나를 픽업해 언니에게 인도해준 사람을 끌어안고 울지는 못 했다. 눈물을 흘리면 내가 너무 초라할 것 같았다. 라의 앞에서는 초라하지 않았다. 누가 더 잘 나고 못 나고가 아니었다. 그저 라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