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아 지금 너를 함부로 쓰면 나중에 화병이 나.
D언니가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왜 그렇게 이타적으로 살아. 가족의 뿌리를 헤집으려고 하지 말자. 그렇게 살면 안 돼.
D언니는 전에 없는 확신으로 나를 가르쳤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말이 그렇게 사랑스럽게 들린 적은 처음이었다. 언니는 내가 분개하기를 꺼려하는 일에 대신 분개해주었다. 가족이라는 복잡한 뿌리에 대해서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해주던 것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 뿌리를 캐내기 위해서 흙을 걷어낼 수는 있는데 그럴 수록 더 복잡하고 단단하게 아주 드럽게 얽혀있다는 것만을 확인해야 한다고. 그 뿌리가 너무 싫어서, 내 목을 조여오는 것 같아서 끊어내면 결국 내가 말라 죽어갈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뿌리를 헤집으면 안 되는 거라고 했다. 그렇게 살면 살 수가 없다고 했다.
01
돌아오면서,
언니에게 가진 내 감정이 틀리지 않았구나, 안도했다. 나는 주로 무언가를 받치고 있는 역할이었는데 언니는 내가 기댈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나를 버거워하지 않고 벅차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언니를 만나면 평소 다른 사람들과는 하지 못했던 말이 술술 나왔다. 예전에 학교 동기 동생이 나에게 "언니는 드물게 사유를 하는 사람이에요."라고 한 적 있는데 나에게는 D언니가 그렇다.
우리는 전적 대학에서 만났다.내가 그렇게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서 공을 들인 것은 언니가 처음일 것이다. 사소한 만남이었다. 언니는 당시 다른 대학을 다니다가 우리 학교에 편입한 상태였고 나는 언니를 그냥 편입한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표정변화도 거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무뚝뚝한 사람. 그 외 그에 대한 정보는 전무한 상태였다.
어느날, 현대 시 수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교수님이 저번주에 나누어 준 프린트를 보고 같이 읽어보자고 했는데 프린트가 없었다. 프린트를 책 사이에 끼워둔 것 같은데 없어서 가방을 뒤적이며 프린트를 찾고 있었다. 그 과정에 소리가 좀 컸는 지 약간 이목이 쏠렸고 교수님은 프린트 없으면 다른 친구와 함께 보라고 했다.
나는 다른 친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상황이 조금 민망해서 쭈뼛거렸는데 그때 복도 건너편 대각선 앞에 앉은 편입한 언니가 환하게 웃으며 입모양으로 [이리 와!]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어있는 자신의 옆자리로 이동했다. 나는 거절하고 다른 동기 친구의 옆자리로 옮길 수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언니의 웃음에 이끌려 거기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 이렇게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 의자에서 언니의 온기가 느껴졌다. 펜을 든 언니의 팔뚝에 비둘기 모양 문신이 있었다. 언니는 시선이 느껴졌는 지 그걸 감추려고 했다. 나는 언니에게 타투한 거예요? 라고 종이에 써서 물었다. '판박이야' 언니의 답장.
나는 당연히 믿지 않았지만 그보다 언니의 글씨체가 더 인상 깊었다. 한 10도 15도 정도 기울어져 그리 각이 지지 않은 세로로 긴 글씨체. 나는 뾰족하게 각이 살아 있는 세로로 긴 글씨체를 가졌었다 당시에. 우리 글씨체가 제법 비슷하고 또 달라 재미있었다. 언니는 태연하게 수업에 집중하는 듯 보였고 나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귀찮아하지 않을까?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까? 수업은 프린트가 없었을 때보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언니는 어디 살아요?'
'기숙사에 살아.'
'그럼 저녁은 어떻게 먹어요?'
'주로 사 먹는 편이야.'
'그럼 오늘 저랑 저녁 같이 먹을래요?'
프린트 귀퉁이에 물음표를 찍고 언니의 팔꿈치를 톡톡 쳤다. 언니가 그걸 보고 아까만큼 환하게는 아니지만 살짝 웃었다.
'좋지.'
좋지라니! 그래, 그러자, 그럴까 같은 마지못한 대답도 아니고 좋아 정도의 대답도 아닌 좋지라니. 그건 마치 '당연하지!' 처럼 당연하고 쿨하게 다가왔다. 짧은 시간에 언니가 더 좋아진 나는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을 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나는 현대 시 수업 때 항상 언니 옆자리에 앉았다. 언니가 비어있는 옆자리에 가방을 둬도 나는 가방을 치워달라고 하면서까지 그 옆자리에 굳이 굳이 앉았다. 쉬는 시간에 담배도 피우러 가지 않고 앉아서 언니한테 말을 걸었다. 언니는 조용조용하게 모든 것들을 담담하게 풀어내지만 동시에 달팽이처럼 예민해서(달팽이가 실제로 예민한지 아닌 지는 모른다. 그냥 그래 보였다.) 늘 말투나 내용을 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종종 만나 식사를 했다. 나는 언니와 친해진 것에 대해 자랑스러웠다. 그 다음 해에 내가 휴학을 하게 됐을 때에도 학교 근처에는 거의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언니와는 따로 약속을 자아서 만났다.
02
나는 나를 서둘러 알려주고 싶어서 주로 내가 잘난 부분들에 대해서 한꺼번에 쏟아내곤 했는데 언니는 항상 중간 중간 조금씩 조금씩 입을 열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처음 내가 마음을 빼앗겼던 그때처럼. "열정이 대단하구나."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 "나도 그 점을 이해해." 낮은 목소리로 언니는 무엇이든 조용히 듣고 유난스럽지 않게 칭찬하고 위로했다. 그게 되게 뿌듯했다. 언니가 인정해주면 모두에게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반면에 언니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아무 이야기나 털어놓았다. 수녀원에서 1년간 생활한 이야기라든지 모태 신앙인 집안에 비둘기 타투를 했을 때 어머니의 반응 같은 것. "수녀원 생활은 일상을 규칙적으로 살게 해준다는 점에서 좋았어. 잠깐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신앙이 없어도 가능해." 라거나, 비둘기 타투를 보고 엄마가 "너 그게 뭐니?"라고 했을 때 "아 엄마 이거 평화의 상징 비둘기야."라고 받아치자 어머니가 잠시 생각에 빠진 얼굴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언니의 입을 통해 나올 때마다 나를 웃게 했고 지금도 기억하는 재밌는 에피소드 중에 하나로 남아 있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데도 "정말 그랬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같은 문장이 튀어나왔다.
꾸미는 것에 별로 품을 들이지 않고 애교있거나 사근거리지 않는 성격의 나무껍질 혹은 옹이 같은 사람이라 나는 언니가 평범하게 남자와 연애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언니에게는 만나는 남자가 있었다. 같은 종교인이었고 포토그래퍼이면서 목사라고 했다. 포토그래퍼이자 목사. 그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언니의 표정은 밝았다. 진짜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 남자를 조금은 동경하는 것 같기도 했다. 특히 미국에서 히피 사진을 찍는 목사라는 대목으로 그를 설명할 때 언니는 신나 보였다.
03
한때는 나의 마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언니에게 갖는 이 마음이 좀 더 깊고 진한 종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래서 혼자 며칠을 연락하지 않으며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그 남자가 싫진 않았다. 그냥 좀 부러웠던 것 같다. 나는 왜 약간 삐뚤어진 종교인이 못 되었을까?
이제와 고백하지만 그때 그게 속상해서 혼자 술도 마셨었다.
언니는 굉장히 종교와 밀접한 연관을 지닌 사람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종교랄 것이 없었다. 그저 절간의 풍경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향내를 맡는 것을 좋아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언니의 그것과는 멀었다. 언니는 믿음을 강요하지 않았고 믿음에 회의를 느꼈으며 동시에 믿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성경이나 신화 같은 이야기를 하면 따분하고 불편해 견딜 수 없는 사람인데 언니가 해주는 말들은 정말 좋았다. 성경에 그렇게 적혀 있다거나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언제나 인간 됨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사랑과 용서에 대해서 고민했다. 본인이 미움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별로 그렇게 사랑이 가득차지 못한 인간이라고.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때 프린트를 같이 보자고 손 내밀었던 것처럼 당연하게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인간일 뿐이었다. 항상 고민하고 속죄하는 종교적 인간형이라 본인이 하는 것이 사랑인지도 모르는 것.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는 것보다 더 사랑으로 이루어진 행위가 있기나 할까?
04
내가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슈를 데려와 기른 지 두 달 쯤 되었을 때 동물을 좋아하냐고 묻자, 자신은 생명체를 기를 자신이 없으며 무언가 책임져야 할 생물을 집안에 들일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냥 생명체가 부담스럽고 그래서 좀 무섭고 가까이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던 거 같다. 그리고 인상깊은 표현이 있다. 내가 고양이 슈와 뽀뽀하는 사진을 전송하자 언니는 "고양이와 소통할 수 있다니 정서가 정말 특별하다.ㅎㅎ" 라고 답장해왔다. 정서가 특별하다니. 그 말이 뭔가 기분이 좋았다. 언니의 일반적이지 않은 생각, 그 생각이 그대로 담긴 말투도 좋았다.
어쨌든 그래서 언니가 결혼은 하지 않을 줄 알았다. 언니는 결혼할 리 없어보였다. 그러나 갑자기 결혼을 하기로 한다고 했다. 함께 살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 거라고 했다. 나는 거기에 조금 주제 넘게 "결혼 안하고 같이 살면 안 돼요?"라고 했고 언니는 남편 될 사람이 목사이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집을 합칠 수는 없다고 했다. 은근한 배신감이었다. 아무도 배신을 안 했는데 배신 당했다. 나에게도 믿음이 있었구나.
나는 내가 바라보는 언니가 전부였다. 언니의 일부분을 보고 나머지 부분을 멋대로 그려넣은 것이다. 그래 고양이나 내가 책임져야 할 동물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내가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는 남자와는 집을 침대를 한 이불을 공유할 수도 있는 거였는데...
그러나 깊이 깊이 아쉬움이 배어 나왔다. 특히 언니가 남편의 일 때문에 충청도 어디 시골로 멀리 이사를 가야 한다고 했을 때는 그 남편 될 사람이 비로소 미워졌다. '네가 그렇게 잘 났어? 우리 언니가 따라가야 하게?' 같은 소리가 목 바깥으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머릿속에서는 맴돌았다.
그 전에 우연히 후배동생들과 밥을 먹으러 갔다가 학교 근처 식당에서 언니를 본 적이 있었다. 언니가 아닌 줄 알았다. 언니는 웬 곱상하지 못한 남자의 옆자리에 아주 편하게 걸터 앉아 내게 웃어준 것보다 훨씬 더 밝고 경쾌하게 웃으며 시종일관 말을 빠르게 쏟아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즐겁게 하는 걸까. 그 남자는 큰 말 없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저렇게 말이 빠르고 많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었던가? 언니는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고 남자를 소개시켜주었다. 남자가 수줍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었다.
기억이 끄집어내지자 그제서야 나는 모든 것들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언니는 언니가 사랑하는 남자와 언니를 그 누구보다 웃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남자와 살기로 했다. 언제나 나에게 나무 같은 존재였던 언니도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게 의자 옆 자리에 편하게 걸터 앉아 의자 위에 다리까지 접어가며 흐트러진 자세로 떠들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언니에게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아픈 걸 알면 사람들이 나를 물어뜯을 것이라는 공포가 있다. D언니는 몇 안되는 내가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존재였다. 내가 무슨 얘기만 던지면 언니는 그걸 알아채고 뭔가 정곡을 찔러왔으니까. 그러나 그게 아프지 않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처럼 시원했으니까. 항상 나에게 언니란 어떤 존재인 지에 대해서만 생각했고 잘 보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니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그리고 언니의 결혼식 청첩장을 우편으로, 그리고 카카오톡으로 받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