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캐낼 수는 없는 거니까

- 나의 첫사랑, 나의 두 번 째 엄마 C에 대하여

by 이 별

*

무당할머니는 나에게 내가 꼭 그만큼 내어주며 살아야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 것이라고 말했다.

성격이 지랄맞은데 자가 많고 키워내는 팔자라 냄새맡고 사람이 붙어.

본인 참아가며 나 뒷바라지 해주던 것들 그거 다 갚아줘야 해.

덕이 많아서 죽을 때 고맙다고 울 사람이 많겠어.

그래.

공평하게도 아주 공평하게도 그렇지.



**

Dear. C


나는 당신을 먹고 자랐다.


당신에게 나의 뿌리를 깊이 깊이 박아넣고 양분삼아 흡수했다.

여전히 피부는 버석거리고 나의 갈증은 가시지 않고 당신이 나의 두 번 째 엄마야.

어때. 샴페인이라도 터뜨릴까?



***

당신은 억울할까. 아마도 억울할 것이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삶이 공평하지만은 않다고 느끼지만 조금 공평한게 있다면 사람의 마음. 마음은 공평하다. 솔직하기 때문에. 솔직하기 때문에 치우칠 수가 없다. 너에게서 너일 뿐, 너이면서 나일 수가 없다. 그래서 공평하다. 나는 당신에게 마음 주는 법을 배워서 당신의 마음을 양분을 모두 먹고 자라서, 이렇게 잘 자라버려서 그렇게 양분을 나눠주고 마음을 쓰고 고통이 사랑이라고, 살점을 떼주는 것도 마다치 않고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바보, 맹추, 또라이, 허공에 손가락 욕도 해가면서 나한테 이렇게 멋없이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을 원망도 할 것이다. 적어도 당신이 나를 받쳐준 꼭 그만큼의 시간동안은.


그 이후로 나는 무엇을 할까. 그 때가 진정으로 내가 걸어야 할 슬픔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비로소 당신을 보냈을 때, 나는 어디에 서서 무엇을 바라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4면을 다 할애해야 간신히 넷이 앉을 수 있을 식탁에 홀로 앉아 아침을 먹을까. 1구짜리 가스렌지에 좁고 깊은 튀김솥을 두고 손이 많이 가는 생선튀김을 할까. 아님 기분따라 못나보이기도, 예뻐보이기도 하는 연두색 체크무늬 식탁보에 자수를 두고 있을까. 당신의 존재같은 건 전혀 모르는 친구와 전화를 하고 있을까. 당신은 한번도 본 적 없는 단정한 모습으로 회사에 얌전히 앉아 닥친 일을 처리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 어쩌며 나는 다시금 결혼을 고민하거나 아이나 동반자 따위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C. 내 말은.

당신이 나를 자라게 한 그 시간을 다 살아내면 그 후에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디에 있든 내 시선이 향하는 곳에 생동이 같이 하기를 바란다.


그러니 당신은 억울할지도 모르지. 너무나 억울해서, 식혜 밥알처럼 떠오르지도 못하고 완전히 삭아 흡수되어 버린 것이 억울해서 헛헛하게 웃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떡하냐 당신? 2020년으로 딱 십년이 되었다. 당신과 손을 잡은 순간부터 10년이 되었어. 당신의 손을 놓은 순간부터는 5년. 마지막 통화에서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했지.

"나는 한동안 맣이 아플 거야. 앞으로 10년. 딱 10년 간 당신을 그리워할 거야."

당신에게 맹세한 10년까지도 이제 5년이 남았다. 나도 당신처럼 푸석푸석한 땅으로 황폐하게 말라 죽어 갈까. 아니면 모든 지난 에너지를 훌훌 털어두고 새로운 에너지로 살아갈까. 글쎄.


C, 당신은 어느 쪽에 더 많이 울어줄 거야?


나는 한동안 많이 아플 것 같다, 고 말한 지 딱 5년이 지났고 상대방의 증오에 적당히 맞장구 쳐주는 이별의 예의로써가 아니라 정말로 아팠다. 과연 살 수 있을까 싶게 아플것 같다, 고 말했듯이 나는 자주 삶을 회의했으며 또 종종 나와 삶을 회의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떠나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던 말이 무색하지 않게 당신이 눈꺼풀 속에 콱 박혀 모든 사랑스러운 것들을 밀어내고 자리를 넘겨주지도 않더라. 내가 먼저 떠나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던 말은 '(당신을) 떠나야 하는 날'이 생략되었던 것이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당신을 떠나며 기약없이 앓았지만 당신을 떠나지 않으면 나는 언젠가 당신을 잃어야 했다.

나는 당신을 만나 많이 아팠지만 온전한 피해자가 되기보다 칼날이 박힌 옷을 껴입기로 결정했다.

이러니 사람을 길러내고 키워내고 누군가의 뿌리가 될 만큼 그렇게 이타적인 그릇은 못 될지도 모르겠다만.


당신은 나의 뿌리를 매질하면서, 나는 당신에게 뿌리를 단단히 박아 넣으면서. 서로가 쓸려가지 않도록 지탱했었지. 시간이 지나 기억은 왜곡되고 모든 것이 파스텔톤으로 보정된다. 칠이 벗겨진데도 나는 의식적으로 덧입혀 당신을 기린다.

그 시절이 그랬으므로 영원히 나에게 당신이란 그런 존재다.


그런데 C, 그때의 나는 있잖아. 10년을 말하면서도 평생을 걸지 못해서 미안했어. 넌 어땠어. 너는 왜 내게 그러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 말은 없이 "살아라. 제발 꼭 좀 살아봐라." 그랬니.

설령 그게 비아냥이었다해도 나는 당신의 모든 말이 다 진실 같아서 그 말을 붙잡고 살았다.



****

보장된 미래나 뾰족한 대책 같은 건 없지만 살고 싶다. 나는 살기로 했어. 기왕이면 잘 살아보고 싶어서 일을 하고 또 잠을 자고,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몸 어딘가에 콱 박혀버린 마음이 무섭고, 몸 속을 퍼져가는 이 불길한 통증이 두렵다가도 밤은 나를 마음껏 솔직해도 괜찮게 만들어 준다. 그러다 다시 눈을 뜨길 기대하고.

당신은 눈꺼풀 속에 사는 사람이니까 걸음마다 매 초마다 밟히겠지만 밟히는 당신을 즈려밟으며 그 토양에 남은 물까지 힘겹게 빨아들이며 당신을 삭히려 해.


제 뿌리를 파헤칠 순 있어도 온전히 캐낼 수는 없는 법이니까.

뒤죽박죽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네 것인지 내 것인지 모를 근원들을 뒤죽박죽으로 파헤치면서,

파헤쳤다가 두손으로 다시 공손히 흙을 덮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계속 살아 가겠지.

그래도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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