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언니의 결혼식(하)

- D언니에 대한 이야기

by 이 별

05

청첩장에는 교회인지 성당인지 하는 종교 건물 주소가 적혀 있었다.

교회에 가본 적이 언제더라. 12살 때 집 근처 큰 교회에 가면 헌금을 내지 않아도 전도사님이 오히려 500원 씩 용돈을 주었다. 어떤 날에는 목도리를 주었고 삶은 달걀이나 떡볶이를 내어주기도 했다. 좀 싱겁게도 교회를 그만 다닌 이유는 그 교회 목사님께서 믿음은 교회에 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앉으나 서나, 침대에 누워서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되는 거라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500원을 받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가던 내가 어쩐지 진실해보이지 않아 나는 교회가기를 그만뒀다. 그렇다고 목사님 말씀처럼 하나님 이름을 불러본 적도 없었다.



언니의 결혼식은 기억하기론 시청 쪽에 있는 커다란 성당에서 이루어졌다.

2017년 2월. 서울에 이사온지 한 달 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나는 전날 휴대폰을 잃어버려 초행길이기에 미리 지하철 노선과 가는 방법을 종이에 써두고 외워갔다. 언니의 결혼식이라는 착잡함보다 길을 잃지 않고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불안하였다. 무사히 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갔을 때 문제가 생겼다. 당시는 박근혜 탄핵 건으로 시위가 한창이었다. 말로만 듣던 태극기부대를 실제로 본 순간이었다. 그 때문에 도로가 통제되고 내가 미리 알아봐둔 루트로는 갈 수가 없었다. 나는 급히 택시를 올라탔지만 길이 막혀 아마 차를 타고 가는 것이 훨씬 시간이 걸릴 거라고 기사님은 난처해했다.

"좀 봅시다."

내가 휴대폰이 없다고 난감해하자 기사님은 내가 길을 외워가기 위해 만든 조잡한 약도에 그곳까지 가는 새로운 루트를 그려주셨다. 혼잡하고 시끄러운 그곳에서 나는 그 종이에 의지해 그래도 무사히 언니의 결혼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주 멋지게 생긴 성당이었다. 성당에 도착하자 반가운 얼굴들이 비쳤다. 예전 학교의 선배와 후배들이 나를 알아보았고 언니를 찾기 전에 간단한 안부인사를 나누었다. 고향에서 전세버스를 대절해 올라왔다고 했다. '언니는 학교사람들에게 애정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언제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조용조용 노력하던 언니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결혼식장에는 하객이 아주 많았다. 언니가 그토록 도망치고 싶어 했던 가족들도 직계 가족 뿐만 아니라 친지들까지 모두 모여있었다.

언니는 한복을 입고 결혼했다. 축가는 신랑 측의 지인이 국악을 연주했다. 성당, 한복, 국악.

언니는 국악에 맞추어 춤도 추었다. 하얀 저고리에 푸른 계열의 치마를 입고 활짝 웃으며 등장한 언니는 국악선율에 맞춰 자리를 옮겨가며 춤을 추었는데 처음으로 언니에게 생경함을 느꼈다. 내가 아는 언니는 낮은 중저음 목소리로 조용조용 삶과 미학, 세상과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현실에 분노하는 진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언니가 많은 하객들 앞에서 저렇게 춤까지 추며 활짝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언니는 마치 2월에 혼자 깨어나 버린 목련처럼 맑고 커다랗게 보였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언니의 활달한 모습을 처음 본 사람들은 식이 끝나고 성당 식당에 마련된 뷔페테이블에 앉아 언니의 활약에 대해 말을 얹었다. 그러나 언니의 의외의 모습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언니한테 딱 맞는 짝을 찾은 것 같아."

"언니가 그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 봤어."

나는 그 중 누구에게도 뒤지지않게 놀랐지만 그 중 누구도 몰랐던 모습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언니 원래 되게 밝은 사람이잖아." 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들이 모르는 언니의 모습을 안다, 언니는 나와 각별하다 이런 것을 그들에게라도 보이고 싶었다. 언니가 어떤 한 남자와 나란히 서서 결혼서약을 하고 그 남자와의 결혼이 기뻐 덩실덩실 춤을 추더라도 나 또한 언니의 그런 면모를 알고 있는 한 사람이고 싶었다.

언니가 테이블마다 인사를 하러 다니고 있었다. 우리 테이블로도 다가와 와줘서 고맙다며 많이 먹고 가라는 말을 보태고 급히 사라졌다. 나는 언니에게 따로 더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여기에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그런 공치사도 푸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언니가 예의 상 인사를 돌아야하는 하객1정도가 된 것 같아 음식이 잘 들어가지않았다.

음식이 잘 들어가지 않은 것과 별개로 뷔페음식은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크고 으리으리한 결혼식장에 깔끔하게 차려놓은 결혼식 뷔페음식들보다 맛있었고 먹을 만한 것들도 많았다. 이 또한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밥을 먹고 나와서 나는 한참동안 언니가 성당 앞뜰녁에서 가족들과 사진 찍는 것을 지켜보았다. 선뜻 우리도 함께 찍자고 말할 수 없었다. 언니에게는 언니가 속한 세계가 있었다. 여느 결혼식을 갈 때마다 느꼈던 위화감이 똑같이 전해져왔다. 한참을, 정말 한참을 바라보았다. 2월이지만 햇살 좋은 오후에 조금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언닌 하루종일 웃었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언니와 눈이 마주쳤을 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06.

그날 나는 새로운 학생과 첫 수업이 있었다. 표면적 이유는 학생과의 미팅이었지만 사실 그렇게 빨리 튀어나올 이유는 없었다. 성당을 나와보니 다시 번잡하고 혼란스러운 시위 상황과 맞닥뜨렸다. 역시나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나는 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학생을 만나기 위해서 나는 분주하게 거리를 뛰어 다녔다. 그러나 뛸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뛰고 싶었다. "나 여기 있어!"라고 외치고 싶었던 것을 꾹 참았었기에. 뛰다보니 무언가 분출되는 느낌이 들었다. 몇가지 감정들이 환기되고 나서야 학생을 만났다.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잘 했다. 많이 웃고 '애도'에 대한 수업이었기에 눈물을 보이는 학생에게 심심한 위로를 하기도 하며 순조롭게 끝마쳤다.

"조심히 가요! 다음 주에 만나요!"

학생과 헤어지며 나는 언니를 생각했다. 언니의 결혼식. 국악에 맞춰 추던 춤, 햇살에 반짝거리던 치맛단과 어깨, "와줘서 고마워. 맛있게 많이 먹고 가."

결혼식 하객은 누군가의 인생에 들러리로 서는 것이다. 알면서도 나는 언니 인생의 들러리였음이 미웠다. 해가 져서 날이 추웠다. 괜히 코가 시큰해졌다. 언니는 결혼이 아니라 나와 계속 글을 써야 했다는 마음과 언니가 시골로 내려갈 결심까지 하게 만든 남자에 대한 질투, 앞으로 만나기 어려워질 거라는 아쉬움. 화도 났다가 패배감도 들었다가 그런 내가 웃겼다가.



07.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은 언니의 결혼식 전날 토요일, 이태원에서 술을 왕창 마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새로 사귄 미국인 친구와 함께 난생처음 이태원 클럽을 돌았고 그러다 그 중 하나에 휴대폰을 빠뜨리고 왔다. 클럽들은 전화번호는 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클럽시간에 맞추어 한 군데 씩 기억을 더듬어가며 휴대폰이 있냐고 물었다.

"비밀번호가 뭐죠?"

클럽스탭은 휴대폰 비밀번호를 물어보고 부합하자 마침내 휴대폰을 내주었다. 휴대폰을 찾으러 홀로 클럽에 가는 것이지만 손목에 스탬프를 찍고 줄을 서서 들어간 터라 나는 휴대폰을 받고서 술을 한 잔 시켰다. 롱티를 마시면 시끄러운 음악에 사람들 틈에 섞여 춤도 추고 놀았다. 아까 언니가 국악에 맞춰서 덩실덩실 춤을 추던 것이 떠올랐다. 언니는 제 결혼식에서는 출 수 있는 춤을 이런 클럽에서는 추지 않으리라. 나는 언니의 결혼식에서는 추지 못한 춤을 여기서 원없이 추고 나갔다.

칵테일 한 잔과 춤. 막차 시간에 맞춰서 클럽을 나서니 찬바람이 훅 끼쳤다. 낮에는 그렇게 눈부시던 햇살이 다 숨고 조금 남은 여열마저도 싹 거둬간 것처럼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애도과정이다. 애도과정이구나. 언니와 어떤 각별한 관계를 획득한 것도 아님에도 나에게 특별했던 D언니를 독립된 인격으로써 보내주는 일이구나. 언니와 잘 작별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 작별이 이별을 뜻함은 아닌 것을 아주 잘 알았다.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행복해야 해.' 로 결론 지었다.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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