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가는 바람인 줄 알았는데 가슴에 새겨져버린 이름

- S에 대하여

by 이 별

처음에 나는 너에게 6개월 짜리라고 말했다.


- 6개월. 딱 6개월 봐.


그런데 2년이었고 햇수로는 3년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두해가 더 지났네. 어떻게 지내고 있니. 여전히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집은 옮겼니. 잠시 궁금해진다. 되돌아가고 싶지도 여기서부터 다시 걷고 싶지도 않다만.


착한 사람은 왜 고통받는 걸까. 너를 보면 짠했고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마주하면 싫다던데 나는 너에게 나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놓지 못하고 더 발을 묶었다. 친밀감이없는 열정은 육욕을 낳고 열정 없는 친밀감은 헌신을 불러온다.

아주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내가 아프면 너는 울었다. 누구나 아는 병일지라도. 지나보니 너는 해결해주고 싶어했구나. 너는 말보다 행동을 하는 편이었다. 생색낼 줄도 모르고 예쁘게 말로 스스로 높일 줄도 몰랐다. 그냥 했다. 하고서도 미안해했다.


- 이것 밖에 못해줘서 미안해.


네가 한 것들이 초라해서가 아니라 더 해주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그래서 미안함이 드는 마음. 큰 사랑을 받았었다. 이상해. 나는 사랑을 받을 때마다 더 건강해지기보다는 더 아프다. 사실 건강하지 못할 때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더 크겠지. 너는 나와 좋은 시절을 떠올렸고 나는 최악의 상황에서 보였던 너와 나의 용기들을 떠올린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이 말을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도 계속 계속 되뇌이면서.

첫사랑이 나에게 환영같은 존재로 나를 지탱했다면 너는 그 무엇보다 실재하는 나의 통점으로 남았다. 너를 만나는 시간동안 처음으로 타인의 바닥이 아닌 나의 바닥을 마주하는 경험을 했다. 부디 행복해지자.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바란다. 나의 삶도 위독하지만 그래도 다만 1분 정도 할애하여 네 새해의 운 빌어주고 싶다.


스치고 싶었지만 깊은 인연이었다. 정말로 너는 나무였다. 그 앞에 오래 앉았다 일어서 떠난다. 너는 거기에 붙박혀 나를 잡지도 못한다. 너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이별 후에도 우리는 몇 번 더 만났다. 그때 너는 내가 깨끗하다고 따뜻하다고 너무나 맑다고 말했다. 나는 너가 견디기 힘들었지만 너는 내가 뭘 해도 다 괜찮은 사람이었다.


- 살면서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타인에게 내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어.


난 이제 세컨맘이 필요없는 어른이다만 너는 엄마처럼 나를 껴안았다. 그 모든 게 하나도 쉬운 게 없었다. "이만하면 잘 하고 있잖아." 땅을 보며 외치던 그 말 뜻을 그때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 말을 비웃었던 것을 사과하고 싶다. 정말로 그만하면 잘 했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그만해야 했다. 내 병이 너무 깊었었다. 모든 화살을 너에게만 돌렸지만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네가 문제 삼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니.

내가 너를 만나며 초라했던 것은 너의 탓이 아니었다. 너를 감각할 때마다 네가 나의 통점이라서 그 생경함이 아프게 찔러대서 그게 초라함인 줄 알았다. 설렘이나 환상 같은 건 없는 관계 속에서도 "늘 경이로워." 라고 쑥쓰러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 만난 걸 한번도 후회하지 않는다던 말이 떠오른다. "그렇게 아파서 어떡해." 하고 울던 게 떠오른다. 아무리 싸워도 때가 되면 "나 왔어." 하고 눈치보며 들어오던 것이, "그냥 너 잖아."라고 말하던 것이, 별 욕을 다 먹고도 내가 앓아눕자 미역국을 끓여 후후 불어가며 먹여주던 것이. 나는 너에게 해준 것이 없는데 늘 너무 많이 받은 사람처럼 황송해했다. "너가 나를 많이 사랑해주잖아." 하고 웃던 사람이었다. 대체 내 사랑의 근거를 너는 어디서 찾았었니.


엄마의 말대로다. 악처도 남편이 예쁘다하면 악처가 아니라고. 아무리 잘해도 남편이 못됐다하면 악처인 거라고. 너가 잘못이라고 하지 않아서 나는 잘못한 게 없었던 거다. 넌 그 누구보다 나를 평가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바라봐준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도 표현을 안해서 정작 나는 몰랐다. 그때 나는 정말로 네가 밉고 섭섭했다. 사실은 내가 너를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가끔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나를 한순간도 비웃지 않을 수 있지. 내가 울면 너도 울고 내가 웃으면 네가 어떤 상황이든 너는 웃었다. 너를 욕해도 너를 때려도 심한 장난을 쳐도 너는 내가 웃으면 웃었다.


- 너가 웃잖아.


그거면 되는 거였니. 너는 아주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를 정말 좋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너의 좋지 못한 모습들에 실망하면서도 그 사랑에 2년을 살 맞대고 살 수 있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냥 보고 싶었다. 그냥 네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내 세상의 모든 것을 너와 공유하고 싶었다.


착한 사람. 올해는 당신 운이 좋다니까 꼭 행복해. 내가 볼 수 있는 수준에서 성공해서 내 배가 아프길 바란다. 당신은 좀 그래도 된다. 한순간도 당신에게 내가 비웃음 당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내 어떤 모습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고 여겨본 적 없다. 심지어 지금도 그런 확신이 있다. 이게 믿음이고 신뢰가 아니라면,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니. 이제 훨훨 날아가자. 다 떨쳐내고. 남은 박수가 있을 때. 아직 맞댈 손뼉이 있을 때 뒤돌 수 있어 감사하다. 가끔 추억하고 싶다. 다시 없을 순간을 나누어 가졌다.


인생은 늘 큰 배움을 주고 그만큼 큰 세월을 가져가는 구나. 당신을 만난 것을 후회해왔어. 지금도 후회한다. 알지 않았더라면 그런 배움 없었더라면 그리 아플 것까지는 없을 테니. 그러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두운 밤 당신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어김없이. 당신은 어떤 셈도 없이 당장 방문을 열고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상태로 침대 밑에 주저 앉아 내 이마를 짚어보고 내가 잠든 사이 물을 끓여놓고 간단한 반찬과 국거리를 해두고 밥을 안쳐둘 것이다. 나는 그 소리에 깨어나 시끄럽다고 타박하고 너는 달려와 다시 침대 머리맡에 앉아 깨워서 미안하다며 더 자라고 할 것이다. 늦은 오후 밥을 먹으며 "맛있다" 내 한마디에 넌 또 웃고 말 것이다. 바보 같이. 나는 고마워서 짐짓 너에게 "이제 오지 마." 그러겠지. 기어이. 너는 또 알겠다고 할 것이다. 나는 그 대답이 미워서 너를 오해할 테고 너는 말주변이 없어 해명도 못하겠지.

우리는 우리로 남는다.


이런 내가 너에게 무엇을 잘했다고 내가 귀하고 미안하고 예뻤니.

우리 올해도 잘 지내보자.

넌 거기서. 난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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