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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승 Sep 15. 2021

자신의 이야기만!

가족의 시간 13

가족 대화 시간에는 아내나 아이들에게 조언이나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숙제 다 했니? 책상 좀 치울래? 공부 좀 더 하지. 핸드폰은 좀 쉬게 하자." 아내는 괜찮은데 이상하게 아이들을 바라보면 잔소리가 나오려고 합니다. 아이들의 일상과 마음 이야기보다 숙제를 하지 않거나 방을 어지럽힌 상황이 문제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대화 흐름과 관계 없이 숙제 얘기부터 할 때가 있었어요. 잔소리는 한번 물꼬가 터지면 쉴 새 없이 나왔습니다. ‘이것까지만 얘기하고 끝내야지.’ 마음 먹지만, 가랑비처럼 내린 잔소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꿉꿉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가족 대화 시간에 조언을 하면 아이들의 목소리사라지고 제 목소리로 대화 시간을 채우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친구와 싸워 속상한 마음을 얘기하면 이렇게 했어야지 하며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참고 또 참지만 저도 모르게 잔소리가 툭툭 튀어나옵니다. 제 입에서 잔소리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면 아내는 식탁 아래에서 발로 톡톡 치거나 허벅지를 쿡쿡 찌르며 알려주고 있습니다.


조언하고 판단하고 싶은 마음은 부부 간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아내와 초6 딸이 구리 시장에서 옷을 사러 갔습니다. 딸은 자신이 사고 싶었던 것보다 엄마가 괜찮다고 한 옷을 골랐습니다. 집에 와 다시 입어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어요. 자신이 사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옆에서 엄마가 재촉해서 옷을 빨리 고를 수밖에 없었다고 속상하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아내는 강요한 것도 아니고, 좀 더 낫겠다 싶은 옷을 제안한 것이 뭐가 잘못됐냐며 생각해서 말해 준 건데, 이제와 따지니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 제가 끼어들었습니다. 아내 마음에 기름을 붓고 말았습니다. "앗! 나도 그랬어. 어릴 적에 내가 사고 싶은 것보다 엄마 눈치 보며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적이 있었어. 그런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걸 고르는 게 어렵더라고." 순간 아내의 표정이 굳어지는 게 보였습니다. 아내는 딸의 편을 든 남편이 섭섭했고 속상했습니다. 아내의 행동을 제가 어머니를 빗대어 판단한 것이죠.

  

옳은 말이라도 듣는 이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역효과가 나더라고요. 판단이 섞인 잔소리나 조언, 약점과 단점을 지적하는 말은 등도 대화 분위기를 어둡게 했습니다. 자녀든 부모든 잔소리를 듣는 상황이 반복되면 대화하고 싶지 않게 됩니다. 판단 받지 않는 대화 분위기가 가족 대화의 핵심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가족 대화 자리에서는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으로 약속을 정했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 하루 일상과 상황, 그로부터 비롯된 감정을 나눕니다. 자녀와 부모가 하루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죠. 힘들고 속상한 감정을 누군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속상한 마음을 판단 받지 않고 온전히 공감받는 경험을 가정에서 하지 않으면 어디서 해야 할까 이 질문을 놓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가족의 의미는 여기에서 찾아야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감정과 일상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은 엄마와 아빠이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수용되고 마음이 안정되면 밖에서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지키는 마음을 소유합니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이들이 가정에서 평안함과 편안함을 가지고 성장하는 것인데 가족 대화가 그 역할을 합니다. 엄마, 아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자녀에게 표현하는 삶도 그냥 저절로 되지 않는 듯싶습니다. 연습이 필요합니다. 성장 과정에서 저의 감정과 상황을 부모님께 솔직하게 터 놓지 못했습니다. 가정에서는 서로의 약한 부분까지 포용하고 어떤 감정이든 인정하고 존재 자체로 수용해 주는 연습을 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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