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현승 Sep 23. 2021

대화 약속을 공유하다

가족의 시간 14

가족 대화 약속 3_ 대화 약속은 공유한다


친척이나 다른 가정의 가족과 함께 가족 대화를 나눌 때는 미리 대화 약속을 말씀드리고 있어요. 물론 그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저희의 대화 약속을 나눠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왠지 유난 떠는 듯싶었습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의 시구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함께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배경과 스타일, 말 습관이 한 자리에 모여는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보는 가족과 달리 다른 가족들이 함께 할 때는 서로의 차이에 민감할 수 있고, 그 다름이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이에 서로의 삶을 나누는 대화의 본질에 집중하고자, 함께 하는 가족 대화가 평온하고 안정된 상황에서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대화 약속이 무엇인지 나누게 되었습니다.


처가댁에서 자는 날에는 저희는 거실 가족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고 편하게 안부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으니까요. 또 다른 가족이 있는데 저희만 따로 모여 이야기는 모습도 이상하고요. 그래도 한번 정도는 처가 가족들과도 각자의 일상을 이야기를 해 보면 어떨까 했습니다. 아내에게 먼저 가족 대화 의향을 묻고 동의를 받은 후에 용기를 내 보았습니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희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가족 대화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한번 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었고 얼마나 뻘쭘한지요. 가족들이 둘러앉아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풍경이 얼마나 낯설었는지 모릅니다.


한번은 장모님을 비롯해 저희 가족까지 일곱 명이서 가족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처가댁에서 처음 하는 가족 대화여서 떨리기도 했고 잘 될까도 싶었습니다. 오늘 하루 일상 이야기를 3분 동안 말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예상 못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몇몇 가족분들이 말하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핸드폰을 계속 보며 카톡을 하거나 다른 것에 집중하였습니다. 평소라면 이런 모습은 이상한 게 아니었습니다. 거실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풍경이었습니다. 같은 공간에 모여 있어도 저마다 다른 무엇을 하잖아요.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핸드폰으로 스포츠 경기를 봅니다. 둘 셋이서 얘기를 주고받고, 실내 자전거를 타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가족 대화 때 핸드폰을 하지 않고, 말하는 가족에게 마음을 주는 연습을 한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이 낯설게 부딪혔습니다. 아이들의 시선이 듣는 가족들이 아닌 핸드폰으로 향했습니다. 아무리 엄마, 아빠가 잘 듣고 있어도 아이들은 경청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하는 분들께 마음이 쏠렸습니다.


이날 약속을 공유하지 않은 채 가족 대화를 하면 힘들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다른 가족들과 가족 대화를 하면 저희의 약속을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서로 존중하면서 듣는 마음으로 가족의 일상에 귀 기울이는 대화는 다음에 또 참여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다른 가족들과 함께 할 때, 가족 대화 약속을 소개하며 이 시간만큼은 잘 지켜달라고 말씀드리기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래도 공유된 약속은 불필요한 오해를 예방하고, 판단을 하지 않게 돕고 원치 않는 상황으로 인한 감정 소모를 막는 소중한 역할을 했습니다. 공유된 가족 대화 약속은 대화에 참여하는 가족들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이전 13화 자신의 이야기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