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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승 Sep 25. 2021

가족 대화요? 공평한 대화 점유율 덕분입니다.

가족의 시간 16

가족 대화 초기에는 여러 가지 실수를 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마치는 시간을 알리지 않고 가족 대화를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대화를 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힐끔힐끔 시계를 보았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가족 대화가 언제 끝날지 몰랐고, 끝내지 못한 일 때문에 마음만 급해져 듣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아내도 이런 이유로 마음이 조급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족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마치는 시각을 정해 알람을 맞췄습니다. 다들 이전보다 이야기하는 사람에 집중했습니다. 전에는 누군가 얘기하는 중에 불쑥 끼어들어 언제 끝나는지 묻고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재촉했는데 마침 알람을 설정한 다음에는 이런 말들이 사라졌습니다.


마침 시간을 정하면서 가족 대화에 임하는 마음이 안정되었지만 또 다른 문제를 만났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길게 이야기를 하면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되면 맨 나중 차례 가족이 말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약속한 시간을 넘어 마지막 한 사람까지 들으려 하면 아이들은 그런 게 어디 있냐며 따졌습니다. 아이들은 기회를 못 얻어도 괜찮아했지만 저는 너무 아쉬웠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의 일상이 궁금했고, 제가 나누지 못하는 상황도 안타까웠습니다.

 

주로 제가 길게 이야기했습니다. 가끔씩 제 차례 때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약 5분이 넘으면 아이들의 눈빛은 초점을 잃고 제 이야기 밖으로 나갔습니다. 제 목소리는 거실을 가득 채웠지만 아이들 마음에 가 닿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열을 올리며 말해도 아무도 듣지 않더라고요. 이런 문제가 반복되면서 가족 대화 시간에 절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모색했습니다.


저녁엔 왕복 135km 고속도로 출퇴근 길 운전을 마친 아내에겐 너무 피곤한 상황이었고, 아이들과 저희 부부에겐 하고 싶은 것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시간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한정된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어느 정도가 괜찮을지 이야기하며 가족의 시간 견적을 내 보았습니다. 거실에서 만나는 가족의 시간은 하루 최대 30분으로 정했습니다. 그 나머지는 개인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 대화에서 한 사람이 말하는 시간은 5분이었습니다. 5분은 고정된 시간이 아니라 얼마든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었습니다. 할 일 많은 분주한 날은 3분만 이야기했고, 정신없이 바쁘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1분만 얘기했습니다. 가족 중 누군가 아프면 모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말하는 시간은 그날그날 다릅니다. 가족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누구나 자신의 상황을 말할 수 있습니다. 가족 중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숙제나 일이 있다고 하면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이에 따라 시간이 조율됩니다. 아이들이 매번 긴급 신호를 보내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부탁을 엄마 아빠가 수용하면 아이들은 인정받는 느낌을 받더라고요. 상황을 있는 그대로 공감해 주면 아이들이 좋아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가족의 시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닌, 가족의 행복을 위한 대화라는 관점을 놓치지 않고 싶습니다.


저희 가족이 실천한 방법을 'N분의 1 대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대화 점유율이 공평한 가족 대화는 가족들을 지치지 않게 하고 건강하게 지속하는 힘을 갖습니다.


저희는 4인 가족입니다. 5분씩 말하면 20분이면 충분했습니다. 3분씩 말하는 날은 12분, 1분씩 하면 4분이 걸렸습니다. 이 정도면 가족의 시간을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루 일상에서 소화가 가능했습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말하는 시간을 똑같이 정한 약속은 2019년 4월부터 현재까지 가족 대화를 이끌어 온 최고의 약속이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실천한 방법을 'N분의 1 대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대화 점유율이 공평한 가족 대화는 가족들을 지치지 않게 하고 지속하게 하는 건강한 힘을 갖습니다. 'N분의 1 대화'는 저의 소통 독점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시간과 관련이 있습니다. 시간 약속만 잘 지켜도 건강한 가족 문화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시간 약속을 정하고 대화를 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연습했다고 생각합니다. 5분을 약속 시간으로 정했지만 말하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남은 상황에서 끝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침 알람이 울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약속한 대로 멈추어야 할까요, 아니면 계속 이야기하도록 해야 할까요? 여기에 두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가족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이런 상황이 되면 1분 추가 시간을 주어 마무리를 짓도록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무리 이야기의 절정 부분이라도 약속한 대로 멈추는 것입니다. 저희는 두 가지 방법 모두 사용합니다.


< 공평한 대화 점유율이 있는 대화, 타이머를 활용한 N분의 1 가족 대화 매뉴얼 >
1. 가족 중 한 사람이 ‘타이머’를 준비합니다.
2. 가족들이 협의하여 몇 분씩 이야기할지 정합니다.
3. (5분으로 정했다면) 5분 알람을 설정하고 관리하는 시간 관리자를 정합니다.
4. 시간 관리자는 약속된 5분 알람이 울리면 말하는 사람에게 알려줍니다.
5. 추가 시간을 쓰지 않기로 했다면, 약속된 시간이 끝나면 차례를 바꿉니다.
6. 추가 시간을 사용한다면 그만큼 시간 알람을 다시 맞춰 남은 이야기를 하게 합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추가 시간이 끝나도 멈추지 않으면 단호히 이야기를 마치도록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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