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현승 Sep 28. 2021

얘들아, 오늘은 몇 시에 만날까?

가족의 시간 17

"얘들아, 얼른 모여. 더 늦기 전에 거실에 모이자."

"내가 뭘 하려고 하면 아빠가 가족 대화를 하자고 해서 짜증나."

"대충 정리하고 와! 가족 대화 끝나고서 다시 하면 되잖아."


가족 대화 초기에는 제가 생각하는 적당한 때에 거실에서 가족들을 힘차게 불렀습니다. 아이들이 뚱한 표정으로 오더라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한다는 마음일 수 있었고, 가족 대화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인 듯싶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아이가 시작하기 전에 쌓였던 불만을 꺼냈습니다. 아이가 왜 속상해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가족 대화 시간이 고작 20~30분 정도였고, 그밖의 시간은 개인의 시간으로 쓰고, 끝나는 시간도 알렸고, 대화 점유율을 공평하게 하면서 시간이 늘어지지 않게 했습니다. 시간에 관해선 충분히 조율했다고 여겼습니다. 아이가 이야기하는 핵심은 아빠의 타이밍이 소중하듯 아빠가 부르기 전에 자신이 하고 있었던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13살 딸이 그간 참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니 안쓰러웠고 미안했습니다. 제 생각이 미치지 못한 아이만의 상황이 있었고, 딸의 말대로 가족의 타이밍을 잊고 있었습니다. 게임, 유튜브, SNS, 숙제, 친구와 줌 소통, 전화 통화 등은 (제가 매기는 중요도와 달리) 갑자기 중단하면 속상한 아이만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얘들아, 오늘은 몇 시에 만날까? 8시는 괜찮아?"

"아빠, 8시 30분은 어때? 숙제가 좀 남았거든."

"8시 30분 좋아!"


주로 밤 8시에 가족 대화를 하지만 자잘한 변수가 생기거나 한창 진행 중인 아이의 상황이 있습니다. 화장실에 간다. 친구들과 줌에서 만나기로 했다. 영상 편집을 마쳐야 한다. 등 아이의 상황을 예전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이 또한 느긋한 마음으로 거실 식탁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대화 자리에 오는지, 그 마음 풍경에 따라 대화할 때 목소리와 표정이 달라지더라고요. 


가족 대화 시간 조율은 제가 하지만 시간 결정권은 아이들에게 많이 주고 있습니다. 시간을 통보했을 땐 아이 마음이 닫히기도 했고, 방에서 거실로 오기까지 꽤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약속 시간을 직접 말하면 스스로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힘이 세졌습니다. 가족 대화 전에 숙제를 끝내는 연습도 하고, 자신이 존중받는 기분도 드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선택할 기회가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편 가족 대화인데 시간까지 조율한다니 좀 과한 듯하죠? 형식에 얽매이는 건 아닌지,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가족이기에 편하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규칙까지 정하는 건 아니지 않나 할 수 있어요. 가족 대화가 언제 끝나는지, 마치는 시간을 알리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회사도 아닌 가정에서까지 답답한 규율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와 삼촌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서로를 함부로 대했을 때 어린 마음에 가족이 되지 말면 좋겠다 싶었지요. 이때 피어난 '가족이란 뭘까?' 하는 질문 꽃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싸우는 어른들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욕을 하면서 왜 계속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는 일을 반복하는지 궁금했어요. 우당탕탕 소리가 시작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건 꿈이야 꿈이야 했습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어른들은 이 한마디를 건네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린 마음에 가족이기에 따듯하게 대하면 사이가 좋아진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치열한 격돌 장면에 감히 낄 수 없었습니다.

 

가족 대화를 디자인하며 바탕에 둔 핵심 키워드는 "가족이기에"였습니다. 가족이기에 쉽게, 대충, 함부로 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마음만 앞설 때가 있었고 배려하지 못하는 장면도 있지만 가족이기에 존중하며 "언제 가족 대화를 시작하면 괜찮을까?" 물어봅니다.

이전 16화 가족 대화요? 공평한 대화 점유율 덕분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