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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승 Oct 10. 2021

가족 대화 VS 게임, 유튜브, 넷플릭스?

가족의 시간 19

"아빠, 너무 재밌어.", "또 하고 싶어.", "이 시간이 기다려져." 이런 얘기는 가족 대화를 시작한 이후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2년 이상 가족 대화를 해도 긍정적인 반응을 듣지 못하니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네요. 이럴 때 찾아오는 게 있잖아요. "쓸데없는 짓이야.", "다 부질없어. 평범하게 살아.", "이런다고 뭐가 달라져?", "가족들 힘들게 하는 거야." 이런 목소리들은 어디 숨어 있다가 튀어나오는지 투투둑 쏟아지는 그런 날이 있어요. 

  

한편 긍정적인 소리를 못 듣지만 이제는 하기 싫다는 얘기 또한 없어서 위안이 됩니다. 물론 가족 대화를 처음 시작할 때는 "또 해?", "이거 혹시 매일 하는 거야?", "맨날 똑같은 얘기뿐인데 이런 게 왜 필요가 있어?", "오늘 할 일 엄청 많아." 등 귀찮고 하기 싫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5분 동안 오늘 하루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아주 간단하죠? 그런데 가족 대화를 할수록 이런 방식에 지루해했고 특별한 것을 원했습니다. "맨날 오늘 경험만 얘기하니까 재미없어.", "보드 게임으로 바꾸는 게 어때?" 이런 얘기가 들릴 때마다 부담이 됐지만 저도 이맘때는 가족 대화가 주는 '재미'가 무엇인지 몰랐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겼어요.


'재미와 즐거움'이란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다르잖아요.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서 느끼는 재미와 가족들과 동네를 산책하는 즐거움은 같지 않잖아요. 긴장되고 스릴 넘치는 짜릿한 기분은 특별한 상황에서 맛보는 재미죠. 그런데 아이들은 게임과 유튜브에서 맛보는 재미가 모든 활동의 유일한 기준이 되는 듯싶었어요. 탄산음료에서 나오는 톡톡 쏘는 시원한 느낌을 모든 음식에서 원하듯 말이에요. 게임과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 느끼는 맛을 가족 대화가 어떻게 줄 수 있겠어요?


2년 지난 지금은 가족 대화가 저희 가정에 무엇을 선물하는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가족 대화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재미'보다는 '행복감'에 가깝습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떨어져 지낸 가족이 이렇게 건강하게 함께 머물고 있다는 안정감에서 출발합니다.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가 모르잖아요. 각자의 삶에 숨겨진 크고 작은 사건들은 마치 숨겨진 보물과 같습니다. 비록 5분이라는 짧은 시간이고, 아직은 자신이 경험한 갈등이나 감정을 어설프게 표현하지만 이야기 속에 담긴 아이의 마음과 일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저와 눈맞춤하며 들어주는 가족들이 곁에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놀라운 일처럼 반응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매일 반복하는 수업, 숙제하기, 쉬는 시간, 점심시간, 친구들과 놀기, 학원 등의 경험이 보잘것없는 일상이 아니고, 보물처럼 반짝이는 일상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저희 아이들과 제가 가족 대화를 기다리는 마음이나 대화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이 다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짜릿하고 색다른 재미와 즐거움을 가족 대화에서 찾기는 힘들 것이에요. 우리 아이들이 가족 대화를 하면서 넷플릭스와 유튜브와 게임에서 느끼는 재미와 가족 대화를 하면서 누리는 행복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개인의 시간에서 맛보는 행복이 있듯이 가족의 시간이 아니면, 가족이 서로 모여 대화하지 않으면,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발견하는 행복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초6 딸이 이 말을 할 때가 언젠가 오겠죠?


"아빠, 그때 아빠가 식탁에서 이야기한 행복이 뭔지 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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