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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승 Oct 13. 2021

뻔한 방식이어도 괜찮습니다.

가족의 시간 20

가족 대화를 해 보고 싶은 분들 계세요? 가족 대화를 가정의 일상 문화로 초대하고 싶은 분들께 도움이 될 글을 써 보았습니다. 비결은 아니지만 어떤 마음으로 가족 대화 습관을 만들었는지 나누어 드릴게요. 올해 저희 가정의 가족 대화 나이는 만 두 살입니다. 두 살 나이가 말하듯 여전히 돌봄이 필요합니다. 깨지기 쉬운 그릇과 같기도 해요.


대화 그릇을 빚을 때 어떤 대화 방식이 저희에게 잘 맞을지 고민을 했습니다. 저희는 맞벌이 부부이기에 이런 현실 위에서 대화 그릇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특히 가족 대화가 퇴근 후 감당하는 또 다른 일이 되지 않아야 했어요. 그래서 가능한 한 대화 방식을 단순하게 디자인했습니다. 거실 식탁에 모여 하루 일상을 5분 정도 이야기하는 게 전부입니다. 진행 방식이 너무 평범하죠?


아이들이 아무리 좋아해도 엄마 아빠가 지치면 얼마 가지 못하더라고요. 물론 가정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엄마 아빠가 여유가 있다면 재밌는 활동을 넣을 수 있겠죠. 저희 부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퇴근해 인천에서 남양주까지 75km 고속도로 운전해 도착하면 녹초가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가 오기 전까지 학교 업무를 마무리하고 아이와 놀거나 저녁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대화 형식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엄마 아빠가 지치지 않을 수 있는 방식, 가족 모두가 넉넉하게 소화할 수 있는 형식이면 충분했습니다.


맞벌이 부부이면서 아내가 다음 날 새벽 5시 출근해야 했기에 가족 대화를 멋지게 디자인해야겠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다양한 대화 메뉴는 엄두도 못 냈죠. 가족 대화를 시작하고 나서 몇 개월이 지나도 진행 방식에 변화가 없으니 밋밋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정감은 있었지만 거기엔 '식상함'도 끼어들었습니다.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얘기하니 아이들은 지루해했습니다. 축 쳐진 표정으로 더 이상 할 말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변화가 없으니 호기심이 사라지고 재미가 떨어지기 마련이죠. 저야 가족 대화를 일상 문화로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참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신메뉴 개발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엄마 아빠와 새롭고 맛있는 메뉴를 원하는 아이들 사이에 의견 조율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질문 카드도 활용하고, 보드 게임도 해 보고, 질문 만들기와 짝을 이루어 대화도 해 보며 여러 가지 모색을 했습니다. 문제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컸습니다. 저녁 시간은 어설프게 지나갔고 무엇을 위해 만나고 있는지 목적을 잊기도 했습니다. 돌고 돌아 내린 결론은 다시 뻔한 방식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하소연에 공감이 되었지만 저희 부부가 지쳤고 소화가 힘들었기에 서로의 일상을 5분씩 이야기하는 뻔한 방식으로 돌아왔습니다.


한편 아이들의 바람을 채워주지 못해 미안하면서도 메뉴가 단조롭다고 가족 대화 문까지 닫아야 하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메뉴로 소문 난 음식점 있잖아요. 진행 방식은 평범하지만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이 시간이 아니면 찾기 힘든 보물 같은 아이들의 감정느끼고, 가족의 목소리로 서로에게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퍼즐 조각 같은 일상이라도 엿볼 수 있으니 어찌 포기하겠어요?


오늘 하루 가족의 일상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저희 아이들은 아직은 이 음식을 별로 좋아지는 않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입맛도 변하잖아요. 아이들이 자랄수록 하루하루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준 시간이 그리워지지 않을까 합니다. 뻔한 오늘을 뻔하지 않게 듣는 가족이 있다면 메뉴가 단품이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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