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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승 Oct 24. 2021

아이의 '듣는 마음'은 어떻게 자랄까요?

가족의 시간 22

'경청'은 상대를 존중하는 소중한 태도입니다. 귀 기울여 경청하는 모습에서 듣는 분의 대화 인격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기꺼이 '듣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대화하기 전에 하던 카톡, 게임, 유튜브, 숙제, 집안일, 업무 등을 잠시 멈춘다는 것, 개인 시간을 상대방에 내어준다는 것, 지금 이 순간 마주한 분을 바라보며 집중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저는 경청하는 마음을 '듣는 마음'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뒤집힌 컵에는 물을 붓지 않습니다. 경청하지 않는 대화는 엎어진 컵에 물을 붓는 일이 아닐까 해요. 계속 부어도 소용없는 것처럼 경청하지 않은 채 아무리 들어도 듣는 이의 마음에 담기는 것이 없습니다. 듣는 마음은 듣는 이의 마음 그릇을 바르게 세워놓습니다.


그렇다면 '듣는 마음'은 어떻게 자랄까요?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태도는 어른들도 갖기 힘듭니다. 부모의 권위로 "어허, 똑바로 봐. 어딜 쳐다봐. 여길 봐야지." 하며 엄한 분위기를 만들면 아이의 정서에 문제가 생기거나 역효과가 날 것입니다. 반면에 부모가 얘기하든 말든 관계없이 아이가 전혀 듣지 않는데 방관하는 모습도 문제가 있습니다.


듣는 마음은 엄마 아빠의 삶으로 전해지는 대화 인격이지 않을까 해요. 먼저 부모가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정에서 존중받아 본 경험이 없다면 어떻게  듣는 마음이 자랄 수 있을까요.  먼저 부모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데서부터 듣는 마음은 자랍니다. 부모가 아이의 눈빛을 보면서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듣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부모를 닮아갑니다. 아이들은 주로 평소 엄마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대화하는 법을 배웁니다. 배우는 정도가 아니라, 말할 때 표정, 제스처, 말투까지 닮더라고요. 가랑비에 옷 젖듯이 부모의 뒷모습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배어듭니다.


듣는 마음은 가족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성장합니다. 여전히 저희 가족의 듣는 마음은 어설프고 산만하지만 부족한 모습이 조금씩 다듬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스마트폰을 슬쩍슬쩍 보는 아빠였습니다. 아이들에게 긴급해서라고 둘러댔지만 긴급하긴요, 급하면 전화를 했겠죠. 실은 당장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내는 대화 중에 갑자기 세탁기를 돌리러 가거나 거실에 이곳저곳 널브러진 물건 정리를 하곤 했습니다. 초6 첫째는 갑자기 춤을 추거나 동생에게 장난을 걸었습니다. 초2 둘째는 몸을 잠시도 가만히 두지 못합니다. 그냥 한 자리에 앉아 있는 걸 힘들어했습니다. 식탁 의자에 앉았다가 거실 소파에 갔다가를 반복했습니다. 우리들의 듣는 마음은 이렇게 좌충우돌하면서 자라고 있습니다. 


부족한 모습 많지만 그래도 건강한 방향으로 듣는 마음을 연습하고 있다는 믿음, 대화하는 가족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소박한 믿음이 있습니다. 더디게 느껴지지만 아이들의 듣는 마음은 오늘도 자라고 있는 건 분명하잖아요. 듣는 마음으로, 깊이 있는 삶을 함께 주고받을 그날, 오늘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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