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현승 Oct 02. 2021

스마트폰이 쉬면 가족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가족의 시간 18

스마트폰이 눈에 어른거리면 슬금슬금 손이 갑니다. 일단 폰을 몸 쪽으로 가까이 옮겨둡니다. 그러고 나서 카톡 앱을 가만히 엽니다. 카톡 화면에 보이는 빨간색 동그라미 숫자들이 가벼운 터치를 기다립니다. 먼저 빠르게 위아래로 휘리릭 훑습니다. (이건 분명 급한 걸 꺼야) 톡 톡 두드리며 확인합니다.


"아빠! 지금 가족 대화 시간이라고..."

"아, 미안, 미안... 아빠 반 학부모님이 보낸 카톡이야. 얼른 답장을 해야 해서..."


식탁에 서로 마주 보는 상황이었고 뻔히 들킬 일이었죠. 아이들이 모를 거라 예상치 않았습니다. 일련의 동작들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습관성 행동이었습니다. 답장을 서둘러야 했다는 변명은 궁색했습니다. 급하긴요, 5분 후면 가족 대화가 끝나는데요.


스마트폰을 잠깐 볼 수 있지만 진짜 문제는 '잠깐' 머물지 않는 데 있었습니다. 대화보다 카톡에 마음이 들락날락했습니다. 가족의 목소리는 들렸지만 눈맞춤은 카톡과 했습니다. 당연히 감정을 읽기도 어려웠습니다. 제 마음은 스마트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알더라고요. 엄마 아빠가 자기 얘기를 듣는지, 듣는 체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들으려는 태도와 듣는 척하는 태도는 다르잖아요. ‘체한다, 척한다’는 거짓으로 그럴듯하게 꾸미는 모습이잖아요. 한마디로 거짓 태도죠. 습관이 무서운 게 처음 몇 번은 '이건 아니야. 거짓 태도잖아.' 하며 마음이 찔렸지만 횟수가 잦을수록 찔림의 강도는 서서히 약해지다가 이내 무감각해졌습니다. 카톡을 하다 걸려도 뻔한 핑계를 둘러댑니다. 한번은 아내가 슬쩍슬쩍 카톡을 하는 걸 보았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말하겠어요. 아무 말 못 했습니다. 아내도 저를 볼 때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살짝 궁금해지긴 했습니다.

 

대화를 한다는 건 단지 ‘목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립니다. 아이의 말 내용 자체보다 말투와 표정 더 많은 걸 전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고 하는데 앞모습에서 대놓고 카톡 카톡 하니 한심했고 답답했습니다.


가족 대화를 할 땐 스마트폰을 쉬게 합니다. 가족 대화를 녹음하기 위해 핸드폰 녹음 앱만 작동시킨 후에 화면을 꺼둡니다. 폰은 식탁 가운데에 두고 더 이상 들여다보거나 만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만약 급한 일이라면 카톡으로 알리지 않고, 전화를 한다고 했습니다.


집에서 가족이 곁에 있어도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제법 많습니다. SNS, 게임, 유튜브와 닿기만 하면 시간은 30분은 기본이고, 1~2시간이 금방 흘러가네요.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을 쉬게 하면서 가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가족의 눈빛을 오래 볼 수 있었고, 숨겨진 하루 일상이 어떠한지 들었습니다. 다음엔 가족들과 스마트폰을 좀 더 쉬게 할 필요가 있는지, 이 정도로 충분한지, 만약 쉬게 할 필요가 있다면 어떻게 가능한지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물론 충분히 쉬고 있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이전 17화 얘들아, 오늘은 몇 시에 만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