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현승 Nov 06. 2021

방문객 / 정현종_(아내와 함께)

가족과 함께 시를 낭송합니다 03_아내의 목소리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오래간만에 아내와 다시 시 낭송을 했습니다. 누군가에는 쉽고 또 하고 싶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쑥쓰러운 일이란 걸 새삼 느끼네요. 아내는 굳이 시를 소리 내어 읽을 필요가 있는지 궁금해 하고요, 저는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 제가 시 곁으로 조금 다가서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한답니다. 

시란 제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존재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어제 만나고, 오늘도 만났는데, 내일 또 만나고 싶은 무엇이 되었습니다. 국어 교사로 시 수업을 할 때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요. 가르치는 시를 마음에 담지도 못한 채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제겐 쉽지 않았습니다. 아내도 저와 별반 다르지 않을 듯싶어요. 그래서 아내가 왜 그렇게 시를 낯설어 하는지 이해가 됩니다.

솔직히 제 바람은 아내와 커피를 마시며 시 한 편을 놓고 시 대화를 하는 것이에요. 아직은 바람에 머무르지만 언젠가 남편의 바람이 아내의 마음에 스쳐지나갈 때가 있겠죠? 아내가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살짝 낭송을 마친 후에 질문 한두 개를 놓아 보기도 해요. 아내가 그 질문을 잡으면 고맙고 그렇지 않을지라도 낭송을 함께 해 준 것만으로 감지덕지합니다.

저는 시를 낭송한 후 제 마음에 남는 느낌이 무엇인지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요. 오늘도 그랬어요. 아내에게 어떤 느낌이 남는지 물어보았어요. 질문이 아내에게 들려진 후 기다림이 있잖아요. 바로 답이 오지 않으니까요. 오늘은 기다려도 먼저 생각을 이야기해 줄 것 같지 않았어요. 저야 이 시를 여러 번 읽었으니 이미 친해진 상태에서 낭송을 한 것이지만 아내는 처음 읽는 시여서 기다림이 좀 더 필요했어요.


"여보, 나는 첫 문장이 좋았어.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 문장이 마음에 와 닿았어. 만약 우리 가족이 아침에 헤어져 저녁에 다시 만날 때 이런 마음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이 들었어. 가족들이 문을 열고 집에 돌아올 때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면 그렇게 말이야. 그럼 시 제목처럼 엄청 환대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시를 읽고서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떠올려 봤어. 요즘 사람들이 서로가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것에 피로도를 느끼고 귀찮아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누가 와도 어떤 사람이 와도 특별히 더 이상 내 마음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지내는 게 아닐까 했어. 누군가를 굳이 가까이 하는 것,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가 온다는 사실과 관계 없이 만남 그 자체가 그냥 귀찮을 수 있는 거야. 혼자 있고 싶고 누군가의 마음 갈피를 읽는 것도 힘들지 않을까 해. 엮이는 것도 싫고."


"그러면 우리는 어떨까?"


"나도 좀 그런 것 같기도 해. 일상에서 관계하는 사람들과만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관계를 넓히거나 깊게 하지는 않아.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내가 한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코칭에서 만나는 분들이 있거든. 그런 분들과 얘기를 하면서 나누어 주는 힘들어 하고 답답해 하는 사연을 들으면 더 귀 기울여 듣게 되고, 좀 더 따듯하게 대하고 싶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어."


"나는 당신이 하고 있는 그 일이 어마어마한 일인 것 같아.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졌을 수 있는 누군가의 사연을 듣는다는 건 그분이 겪은 과거의 가슴앓이, 상처를 듣는 거잖아. 그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지 않을까?" 


짧았지만 이게 어디에요? 아내와 함께 시를 낭송하고 간단하게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주고 받은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이런 순간들이 아직은 저희 부부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부담이 되기도 해요. 시를 한 편, 두 편 읽고 생각을 나누면서 마음을 담는 그릇, 깊어진 삶을 담을 수 있는 인생 그릇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보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 부는 날 / 김종해_(아내와 함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