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할 결심

상처받은 영혼들의 행정 업무

by 배시현


우리는 2년 남짓 연애를 하고 자연스럽게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다. 소개팅에서 만난 그는 듬직하고 어른스러운 사람이었다. 미래에 대한 가치관이 비슷해 우리는 한 번의 큰 싸움도 없이 물 흐르듯 예식장을 계약하게 되었고, 웨딩 스냅 촬영을 한 달 앞두고 있었다.


그날은 드레스 피팅을 예약한 날이었다. 예약 시간이 늦은 저녁이라 그때 우린 조금 지쳐있었다.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카페에 앉아 기다리다 처음으로 진지한 싸움을 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날을 기점으로 우린 다시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결혼은 파국에 이르게 되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싸우게 된 그때 나는 그의 처음 보는 모습을 보았다.(그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는 뭐 그런 일로 파혼을 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현실적인 문제와 감정적인 문제가 뒤섞인 복잡한 연유는 이렇게 보면 내가 문제고, 저렇게 보면 그의 문제로 보이는 알 수 없는 카오스였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다툼의 도화선의 경중이 아니라 본질을 놓치고 있었다는 현실 자각이었다.


그렇게 나는 파혼을 선택하게 되었고, 원인이 무엇이었든 간에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지난날 내 선택에 대한 책임감으로 나는 내가 만든 얼룩을 스스로 지워야만 했다. 무슨 정신으로 결혼식 취소를 진행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일주일 만에 5kg가 빠졌었고, 잦은 근육통과 감기로 하루하루 쇠약해지고 있었다.


문제는 아프다고 누워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었다. 결혼 취소에 대한 위약금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상처받은 커플은 이별에 제대로 슬퍼할 새도 없이 행정 업무에 묶여 어떻게든 담당 업무를 완벽히 수행해야만 했다.


여행사와 항공권은 그가, 웨딩 스냅 촬영과 예식장은 내가 맡았다. 스냅 촬영은 헤어&메이크업과 스냅 촬영, 동행 헬퍼 이모님까지 세 업체의 취소를 진행해야 했다.(우린 예식장 스튜디오 촬영이 아닌, 야외 스냅 촬영을 예약했기에 세 곳 모두 다른 업체였다.)


촬영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취소 요청을 하게 되어 죄송스러운 마음과 함께 어쩔 수 없는 파혼의 사유를 전했다. 어느 업체는 빠르게 취소를 진행해 주었고, 어느 업체는 위로를 전하며 규정에 있는 위약금을 받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호의에 감사함과 동시에 복합적인 감정(이런 상황을 만든 자책감과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억울함과 그래도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안도감 등등)이 들어 나는 또다시 무너져 한참을 울어버렸다.


제일 합의가 어렵고 큰 금액의 위약금은 예식장이었다. 결정적으로 파혼을 선택한 내가 이 건을 맡기로 했고, 무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한 달’이라는 단어는 글자로 보나 소리 내어 읽어 보나 으레 짧은 시간으로 체감되지만, 그때 나는 ‘이렇게 살다 간 피 말라죽겠다’ 싶을 정도로 길게만 느껴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계약은 정말 신중히 진행해야 하고, 위약금 약관은 꼼꼼히 읽어보고, 해당 내용 중 불공정하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시정 요구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또한 공공기관은 잘 이용해야 하는 기관일 뿐이지 절대 만능이 아니었고, 모든 일은 스스로 움직이고 해결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더불어 이 세상은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도 말이다.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된 후(파혼의 대가를 금전으로 다 치른 후에야) 나는 마음 놓고 이별과 상실의 아픔에 직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다만 나와 맞지 않을 뿐이었다. 서로의 반려가 되어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그 애틋한 추억을 어떻게 한순간에 다 잊을 수 있을까. ‘여기는 우리가 좋아하던 음식점이었고, 이 말은 우리가 자주 쓰던 암호 같았고, 이 문제는 그 사람한테 물어보면 금방 해결될 텐데…’ 불친절하게 툭툭 튀어나오는 기억 때문에 나의 일상은 자주 전원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