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앞에서, 퇴사를 선택한 세 가지 이유

두 번째 퇴사

by 배시현



1년 후 나는 다시 오롯이 한 곳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우리 집 빚도 조금은 숨 쉴 수 있는 정도가 되었고, 내 검진 결과도 울음이 무색하게 별일 없이 지나갔었다. 그 사이 나는 회사에서 승진을 했고, 개인 수상도 했다. 조금씩 회사 내에서 나의 입지가 다져지는 것 같았고, 얼핏 보면 회사 생활을 꽤 잘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러나 그때 나는 이미 다양한 인간 군상에 통달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큰 오산이었고, 말할 수 없는 힘듦과 말해봤자 소용없는 힘듦 속에서 몸은 갈수록 망가져 가고, 일에 대한 열정은 조금씩 재가 되어 껍데기만 남은 인간처럼 하루하루 스스로를 잃고 있었다.


그렇게 겨울이 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회사는 갑작스레 미팅을 소집했다. 회사 운영 방침이 달라져 내년부터는 고용 형태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통보였다. 회사는 두 가지 안을 제시하며 개별 상담을 진행했는데, 나는 홀로 ‘퇴사’라는 세 번째 안을 제시하며 헤어짐에 대한 감각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결혼을 준비 중이었고, 익숙한 듯 낯선 퇴사 서류에 사인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 10년을 주기로 나는 또다시 퇴사를 하게 된 것이다.


누가 봐도 퇴사하지 않을 것 같던 내가, 곧 결혼을 앞둔 서른 후반의 여자가 퇴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나치게 솔직했던 첫 번째 퇴사의 경험으로 회사와 나, 서로 간의 아름다운 유종의 미를 위하여 부차적인 이유를 앞세워 웃으며 안녕을 고했다는 점 외에 비슷하지만 다른 10년 전과 지금의 퇴사 사유를 세 가지로 이야기해 보려 한다.


첫째, 더 이상 이 회사에서의 내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10년 전은 명확했다. 더 일찍 퇴사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내 마음만 조금 달리한다면 충분히 미래를 그려볼 만한 회사다. 그러나 일과 사람에 치여 ‘일이 먼저냐, 일단 사람이 살고 봐야지’할 정도의 스트레스는 나를 정신적, 물리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게 했고,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외침에, 살려고 도망을 온 것이다.


둘째, 퇴사 후 하고 싶은 것이 있다.


10년 전은 퇴사 후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는 마음보다 유럽여행이 간절했었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떠날 것 같았고, 그 예감은 맞았다. 그 이후로 나는 유럽을 갈 시간도, 여유도 없어,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아직도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와 다르게 지금의 퇴사는 다른 직업을 갖고 싶다는 열망이 커진 상태로 이루어졌다. 만약 내가 퇴사하지 않고 그대로 회사를 다녔다면 시간은 어제처럼 흘러 5년, 10년이 훌쩍 지났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퇴사를 하고 새로운 일에 적어도 2년을 투자한다면, 그쯤엔 도전한 일에 대한 성패가 어느 정도 가늠되지 않을까? 안되면 그때 다시 돌아가도 늦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물론 더 좋은 자리로 갈 욕심은 진작에 내려놓았다.)


TV에서 90이 넘은 할머니들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일만 죽어라 하며 살아온 날들과 하고 싶은 걸 못해 본 게 가장 후회된다고 하셨다. 해본 일의 결과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해본 일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크다는 말씀에, 백번 공감했다. 나도 할머니처럼 후회하기 싫었다.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 지금의 나를 돌아봤을 때, 왜 그때 도전하지 못했냐며 자책하고 싶지는 않았다.


셋째, 지금이 아니면 다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다.


타이밍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지금인가?’하는 마음의 소리가 나를 지배하며 행동하게 했었다. 지금 멈추지 않고 더 나이가 들면, 현실을 비관하며 멈출 용기도 없이 그저 사는 대로 살아질 것 같았다. 100세 인생에서 앞으로 60년은 더 남았는데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를 변화시킨 이 타이밍은 갑자기 내 삶에 나타나 큰 깨달음이나 용기를 주고 떠난다. 이 감각은 나에겐 꽤 강력해 거부할 수가 없는데 마치 천사의 지침 같기도, 악마의 유혹 같기도 하다.


먼저 천사의 지침 같은 이야기다.

스무 살 초반이었던 나는 지금과 달리 친구와 노는 것을 좋아했었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 분위기에서 시답잖은 농담이나 하며 시간을 버리는 소위 말해 청춘, 낭만 같은 밤을 즐겼었다. 어떤 날은 맨 정신에 밤새워 놀아도 보고, 어떤 날은 노래방에서 방방 뛰며 고함인지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정신 나간 애들처럼 그렇게 젊음이 영원한 듯 자유로웠었다. 그런 비슷한 밤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짙은 담배 냄새와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문득 ‘지금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천사의 지침 같은, 시쳇말로 현타를 느꼈고, 이 감각은 이후 나를 두 번 다시 그런 공간과 시간에 두지 않게 만들었다.


악마의 유혹은 이런 거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같은 버스를 타며 등교하던 옆 학교 남학생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엄친아, 교회 오빠 스타일의 그는 누가 봐도 훈남이었고, 평범한 나를 봐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날은 유달리 버스 안에 사람이 없어 한산했다. 나는 높은 맨 뒷자리에서 한 칸 앞, 두 좌석이 붙어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몇 정거장 후 그가 버스를 탔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맙소사, 다른 자리도 있었는데 내 옆에 앉은 그 때문에 나는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얼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정류장에서 하차를 했다. 하차와 동시에 양쪽으로 갈라져 각자의 학교로 가야 하는 우리는 여기서 헤어져야만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먼저 몸을 틀어 학교로 걸어가는 그의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게 보였고, 마치 ‘지금이야’ 속삭이는 듯한 악마의 유혹은 알 수 없는 용기를 만들어 나를 그의 앞까지 뛰어가게 만들었다. “저기 번호 좀...” 나의 어리숙한 모습 때문인지 그는 싱그럽게 웃으며 번호를 주었고, 이후 몇 번 연락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타이밍이란 녀석은 내 인생에 꽤 영화 같은 순간을 종종 선물한다.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면 나는 영락없이 타이밍의 목소리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선택한 나의 행동은 늘 작게 후회하고 크게 만족하는 형태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정말 몰랐을까? 어쩌면 부지불식간에 도착한다는 이 타이밍을 나는 이미 무의식으로 알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나의 심연에서는 언젠가 퇴사를 할 것이고, 시간 낭비를 그만할 것이며, 그에게 고백할 것이라는 마음이 몽글몽글 꽃 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 나에게, 이제 그만 생각하고 행동하라며 등 떠밀어준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