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건네는
파혼과 위약금 사태로 힘들어하던 나를 지탱해 준 건 가족과 네잎클로버 모양의 팔찌였다.
나에겐 제일 친한 친구가 있다. 그녀와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한 사이다.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같은 고등학교에 이어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왔고, 지금은 공통의 취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소울메이트와 같은 그녀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여름에 태어난 그녀는 빠른 시작과 끝을 보는 특징으로 다양한 분야에 경험이 많고, 겨울에 태어난 나는 느린 시작과 끝으로 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는 특징을 가졌다. 만약 내가 그녀의 추진력을 반의반이라도 장착했다면 지금쯤 한 기업의 CEO가 되어있을 게 분명했다.
이처럼 우린 성향은 다르지만 취향이 비슷해 통하는 게 많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한다. 특히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에 오랜만에 만나도 늘 한결같이 즐거운 사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조차 나는 파혼 사실을 상황이 다 종료된 후에야 알렸다.(이는 어쩔 수 없는 내 성격이다.)
그녀는 내 소식을 들은 순간 바로 나에게 달려왔다. 좋은 해와 함께 온 그녀는 밝은 거리로 나를 이끌며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밥을 먹자며 먹고 싶은 메뉴를 물었다. 나는 우리의 학창 시절이 떠올라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답했다.
‘괜찮아?’
그녀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조심스레 나를 살폈다. 그러자 나는 엄마에게 유치원에서 있던 작은 소동을 얘기하듯, 그녀에게 묻지도 않은 그간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꺼내어 호주머니 속 꼬깃꼬깃한 먼지를 털어버리 듯 쌓아 뒀던 감정의 일말을 조금씩 흘려보내고 있었다.
“잘했어, 그동안 힘들었겠네.”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던 그녀는 나의 선택과 행동에 옳고 그름을 따지지도 않고, 그저 담백한 지지와 위로를 보냈다.(사실 그녀가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녀가 나에게 달려온 순간 이미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지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가족에게조차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힘들어했던 나는, 친구에게 하나씩 이야기를 꺼내며 ‘이 정도는 괜찮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구나’라고 내 상태에 대한 자각을 조금씩 하며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우리는 마치 교복 입은 소녀들처럼 떡볶이를 나눠 먹고,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그녀의 손목에 모르는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전에 보지 못한 팔찌라 궁금해 물어보니, 올해 우리가 삼재라 무탈히 보내기 위해 경주에 놀러 갔다가 구매한 행운의 팔찌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위약금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고,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좌절과 희망의 방으로 문 턱이 닳도록 들락거리고 있었기에 어떤 종류든 희망을 걸 수 있는 거라면 하나쯤 갖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나도 하나 사야겠다.”
무심코 지나가듯 한 말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카카오 선물하기 팀에서 나에게 배송 문자를 보내왔다. 붉은빛의 탄생석과 함께 빛나는 네잎클로버 모양의 팔찌가 곧 우리 집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섬세한 그녀의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다.
힘든 과거는 이제 잊고,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친구의 마음이 기적이 된 걸까? 그 후 위약금 전쟁은 무사히 종료가 되었고, 나는 훨씬 가볍고 안정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승리의 기쁨을 그녀에게 전하며 덕분이라는 말을 정성스레 접어 보냈다.
정말이었다. 그녀가 보낸 행운이라는 이름의 작은 부적은 힘든 나의 일상을 지탱해 주는 마법 같았다. 자고 일어나 눈을 뜨는 게 두려웠던 나에게, 매일 아침 무탈한 하루를 기원하며 네잎클로버를 어루만지던 기억은 삶 가운데 찢어진 암막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처럼 잡히지는 않지만 선명히 존재하는 희망과 위안으로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