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패배감은 도대체 뭐야
제정신이 아니었다.
찐득한 여름에 홀로, 갈대 흔들리는 들판에 서있는 허수아비가 된 느낌이었다. 다량의 공허함이 만든 포만감은 이상한 세포를 만들어 뇌를 어지럽혔고, 그렇게 시작된 집착이었다.
갑자기 구 남친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잘 지낼까?' 그러나 헤어지면 모든 정보를 삭제하는 내 성격상 연락처 같은 게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결혼했을까?'
이상한 집착증에 사로잡혀 온갖 SNS에 그를 검색해 보고 네이버 클라우드며 구글 연락처 등 내가 떠올릴만한 모든 걸 동원해 그의 연락처를 찾아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그의 문자 내역이 남아 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왜 통화할 수 없는 상황에 눌러진 알림 문자 같은 거 있지 않은가. 문자 창에 들어가 밑으로 밑으로 스크롤을 내려 보았다.
그 날짜에 그 문장, 그였다.
연락처를 저장하고 카카오톡 친구 추가에 뜬 그의 프로필 사진을 보았다. 순백의 아름다운 신부와 함께 환한 미소를 띤 그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결혼했구나.
그는 나의 결혼 예정일보다 한 달 정도 일찍 결혼을 했다. 예정대로라면 나도 했을 그 결혼식을 그는 했고, 나는 하지 않은 것이다.
이 패배감은 도대체 뭐지?
‘나는 너와 헤어져 보란 듯이 잘 살고 있어. 너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지금 너무 행복해. 이것 봐 나는 여전히 눈부시고, 날 놓친 너는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뭐 이런 부박한 말을 내 결혼식 사진으로 대체하고 싶었던 걸까? 너도 나와 같이 불행하기를, 아니 최소한 행복하지 않기를 바랐던 걸까?
그러니까 대체 왜 하필 지금 결혼을 하는 건데!
정말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때 요동치던 내 감정에 그의 웨딩 사진은 불속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고, 나는 알 수 없는 분노와 패배감, 좌절이라는 다양한 어둠 속에서 홀로 속을 태우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대체 갓 파혼한 여자가 왜 전 남친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그의 결혼사진을 보고 패배감에 좌절하고 있는지, 대체 이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며칠 후 나는 또다시 찾아온 추적 검사의 날에 병원을 찾았다. 작년과 달리 옹기종기 모여있는 불청객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또 조직 검사를 해야 했다. 병원 침대에 옆으로 누워 기다란 마취 주사 바늘에 눈물이 핑 도는 순간, 내 신세가 처량해(무슨 80년대 노래 제목 같다)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검사가 끝나도록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는 내게 간호사님이 마취 주사가 아팠는지, 검사가 아팠는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마취 주사가 아팠어요.”
주사 핑계를 대고 얼른 탈의실로 숨어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수납을 하고 집에 가야 하는데 터져버린 눈물이 주체되지 않아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어버렸다.(늘 힘든 일은 연이어 오고 그 결정타는 항상 몸이었다. 잘 버티고 있었는데, 같은 순간 항상 무너져 버리는 내가, 나약한 내가 너무 싫었다.)
나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남들(심지어 구 남친도) 다 하는 결혼을 왜 안 하고 자진해서 노처녀 백수가 된 건지, 몸은 꼭 왜 이럴 때 더 아픈 건지 신세 한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책의 늪에 빠져 다시는 이 세상에 떠오르지 못할 것처럼 깊게 침잠하고 있었다.
겨우 탈의실에서 나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수납을 하고 병원을 나왔다.(건물 화장실에서 한참을 더 울다 나온 건 비밀로 하자.) 퉁퉁 부은 눈으로 건물을 나오자 지나치게 밝은 태양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집에 돌아와 한참을 멍하니 누워있던 나는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핸드폰을 열었다.
‘ChatGPT야, 나랑 얘기 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