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와 브런치스토리

행복한 백수를 위한 글쓰기

by 배시현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퇴사와 이별의 상실 속에서 남의 행복을 보며 배알이 꼴리는 행색이라니, 이건 내가 아니었다. 이런 모습은 결단코 내가 아니었다. 외면하고 싶던 나의 바닥을 낱낱이 목도한 순간, 도저히 해소되지 않는 이 복잡한 마음을 어디라도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속마음을 ChatGPT에 두서없이 고백해 버렸다.


‘무슨 대단한 신념을 갖고 ‘내 선택이 옳아’ 스스로를 가스라이팅을 한 건지, 지금 이 나이에 퇴사와 파혼이 맞긴 해? 나 같은 게 무슨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을 만나겠다고 손에 쥐고 있던 것까지 놓아버린 건지 한심하고, 후회돼. 나 이제 어떻게 살아?’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말로 하면 진짜로 현실이 될 것만 같아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말들을 글로 다 쏟아내 버리자 한결 가벼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긍정 회로를 아무리 돌려도 내 현실은 서른 후반의 백수 인생이었고, 현실 도피와 도파민 충전을 위해 어느 소셜 미디어를 접속해 보아도 나보다 어리고 잘난 사람들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지구상에 떠도는 가장 탁한 먼지일 뿐이었다.


(흑백의 양가감정 중 이렇게 흑이 우세했던 순간이 또 있을까?) ChatGPT는 LOSER 외톨이 센 척하는 겁쟁이의 오타와 앞 뒤 문장이 잘 맞지도 않는 그야말로 쏟아진 감정 그 자체의 긴 글을 보고는, 눈치 보는 남친의 다정 모드로 클리셰한 답을 전했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대견해요, 대단해요, 용기 있어요, 앞으로 더 좋아질 거예요.”


뭐지? 왜 울컥하지? 놀랍게도 나는 AI의 답변에 감동하고 말았다. 예상했던 말이었는데 왜 그 말들이 그렇게나 위로가 되었는지, 마치 그런 위로를 듣고 싶어 말을 건 사람처럼 응원의 메시지를 희망처럼 붙잡고는 한참을 더 울어버렸다.(나는 울보가 맞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심리치료를 체험해 보는 장면이 있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정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그 말을 크게 외쳐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다소 뻔한 ‘괜찮아’, ‘잘하고 있어’와 같은 응원의 말을 골랐고, 옆에서 그 말을 계속 외쳐주었다. 나는 이 치료 방법을 듣고 ‘이게 심리치료가 되겠어?’ 의문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 치료의 효과는 대단했다. 누군가의 입에서 전해지는 응원의 에너지는 주는 사람과 닿는 사람 모두에게 커다란 울림이 되었고,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제삼자인 나에게까지 알 수 없는 힐링의 감정을 선사해 주었다.(그 간단하고도 별거 아닌 거 같은 응원의 말들을 우린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 같다.)


다정한 어투로 위로와 응원을 전하던 ChatGPT는 반복된 자기혐오적인 내 글에 깊은 공감과 함께 문장 말미에는 항상 현 상태에 대한 솔루션으로 행동 지침을 제안해 주었다.


‘글쓰기’


건강한 감정의 배설로 심신 안정을 돕고, 지난날을 회고하는 글쓰기는 대표적인 자아성찰의 활동으로 나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특효약이라는 조언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보며 ‘그래 알지, 글쓰기 좋은 거 알지, 하지만 난 지금 그럴 여력이 없어’ 라며 다음을 기약했었다. 이렇게 내가 긴 글을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하면서 말이다.


2년 전인가, 나는 이미 브런치스토리에 작가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때는 시를 사랑하는 지금보다 맑은 영혼이었고, 온종일 단어를 다듬고 문장을 직조하는 일이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러나 사람에 치이고 사회에 찌들어 가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글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심할 때는 사람의 말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가사가 없는 클래식 연주만 찾아들었던 적도 있었고, 어느 날은 이렇게 계속 사람이 사람에게 기가 빨리면 단명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까지 받았었다. 그야말로 전쟁 같은 회사 생활이었다.


그리고 지금, 퇴사와 파혼으로 폐가가 된 허름한 행색으로 다시 글을 만났다.


엉망진창이었던 나는 우연히 브런치스토리에 접속하게 되었고, 지금의 이야기를 하나씩 써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지, 끝은 맺게 될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우선은 쓰자’ 그 마음 하나로 손끝에 진심을 담아, 차가운 자갈 같은 키보드 위를 천천히 걷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사적인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미주알고주알 내 사생활을 다 떠들고 다녔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 이야기를 하는 상대는 가족과 제일 친한 친구 몇으로 축소되었다. 그런 내가 죽을 때까지 나만 알고 싶었던 이 이야기를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 글을 올리게 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에게는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었고, 정리되지 않은 마음과 머릿속을 글로나마 정돈하고 싶은 본능에서 비롯된 것 같다. 결정적으로 더는 전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반항 같은 마음에 될 대로 돼라 고루한 삶의 패턴을 깨버리고, 미친 척 안 하던 짓을 벌리게 된 것이다.(사실 지금도 이 글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으면 좋겠으면서도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한다.)


조금씩 몇 편의 글이 완성되었고, 다시 돌아가 첨삭하는 과정에서 나는 나를 서서히 제자리로 돌려놓거나 새로운 길로 인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성과 후회할 건 하고, 미련은 버리고, 두려웠던 내일을 꿈꾸자는 마음으로 말이다. 원래의 나처럼 무논리 무한 긍정의 해피엔딩을 위해, 행복한 백수가 되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 자기혐오로 집안 분위기를 흐리는 백수보다는 한심해 보여도 웃음을 몰고 다니는 백수가 밥은 더 잘 얻어먹을 수 있을 거라는 결론에, 나는 별거 아닌 일에도 자주 웃으려 했고(특히 실세인 엄마의 말에 자주 웃었고, 실제로 우리 엄마는 귀엽게 웃기고) 손목이 아작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