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몸으로 산다는 건

다시 일어서는 중입니다

by 배시현


나는 잔병치레에도 국가대표 선발전이 있다면 도전해 볼만한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무려 유리몸 보유자


내 몸은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집순이 특징의 콜라보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안전함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는 어떤 무리함이(무리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타인에게는 일상적인 수준도 못 미칠 게 분명한) 존재하면 금방 병이 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내 상태를 말해보자면, 허리 통증과 은근한 두통을 참으며 언제 생겼지 싶은 혓바늘이 거슬려 입을 오물거리고 있다. 나에겐 일상인 증상들을 아래와 같다.


1. 몸살


해당 질병은 신경성 몸살, 퇴근 후 몸살, 감기 몸살, 기 빨려 몸살로 나눌 수 있다.

과로와 극심한 스트레스 혹은 환절기에 면역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바로 열 몸살이 온다. 오늘은 과한데 싶은 날엔 살이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 이럴 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빠른 취침에 돌입해야 한다. 기 빨려 몸살은 대게 어색한 자리에 참석하거나, MBTI EEEE사람을 만나면(사실 그냥 사람을 몇 시간 만나기만 해도 가끔) 온다. 혹 대화 중에 내가 눈을 자주 깜빡이거나, 뜬 눈이 눌린 호떡처럼 납작해지기 시작하면 조용히 집에 보내주기를 바란다.


2. 편두통


신경성, 약시, 어깨 뭉침으로 인한 두통이 자주 발생한다. 몸살과 더불어 누가 더 단골인지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다. 내 서랍엔 타이레놀이 상비약으로 영양제처럼 친근하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두통이 온다.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을 뛰어다니는 누군가로 인해 지진이 나고, 대피령 경고음이 귓가에 울리지만 이 모질이는 그저 헤실거릴 뿐이다.


3. 담


옆으로 자는 습관으로 방심하면 담에 걸리기 일쑤다. 바른 자세로 누워 있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불면의 밤을 초대해, 옆으로 누워 밀려오는 생각을 미끄러뜨릴 필요가 있다. 또한 담에 걸리지 않기 위해 기피할 자세로는 누워서 핸드폰 보기, 엎드려 핸드폰 보기, 계속 핸드폰 보기가 있다. 제일 재밌는 걸 하려면 대가가 따른다.


4. 안구건조증


양쪽 눈의 시력 차이가 많이 난다. (대체로) 좌측 시력으로만 세상을 본다. 가끔 삐딱하게 세상을 보는 건 다 약시 때문이다.(그렇다고 치자) 독서와 영화 감상이 취미인 나는 매일 뭘 보거나 읽고 있다.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교양 있는 척 답하는 "독서와 영화 감상이요, 호호"가 아닌 정말 취미로 자리 잡아 버린 6년 전부터 나에겐 안구건조증 진단이 내려졌다. 울보와 안구건조증 사이엔 별 상관관계가 없나 보다.


5. 허리 통증


평범한 어느 날이었다. 고개를 숙여 머리를 감고 일어나다 허리를 삐끗했다. 나는 평소에 자잘한 허리 통증에 시달리고 있어 나름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사고는 예상치 못했다. 갑자기 다리가 저리고 혼자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누웠다 일어날 때는 지지할 무언가(장우산을 이용했다)가 필요했고, 파스와 진통제로 끝날 문제가 아님을 직감했다.


병원을 찾아가 의사 선생님께 사고의 경위를 설명했다. “머리 감고 일어나다 다쳤어요.” 어이없어하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재채기를 하다가도 다치는데요 뭐.”라며 ‘이번 환자도 앞에 환자, 그 앞에 앞에 환자와 같은 말을 하는군’하는 표정으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을 했다. 그런 선생님의 반응에 아픈 지금이 별난 게 아니라 무탈했던 날들이 특별했던 거라는 혜안을 얻었다.


허리가 무너지니 세상이 누웠다. 마음이 무너졌을 때도 누워있지 못했던 나를 몸이 알아서 눕혀 버린 것이다. 이제 막 파혼의 아픔에서 정신을 차릴 즈음이었다. 그때 나는 나사가 하나 빠진 애처럼 살짝 고장이 나 있었는데(지금도 비슷하지만) 도통 쉬지를 않고 집안일을 하거나, 가구를 옮기고, (버리고, 바꾸고,) 도배를 하고, 과한 운동으로 몸을 혹사시키고 있었다. 현실도피를 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때마침 허리를 다쳤고, 누워있는 것 말고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매일 병원으로 출근을 하고, 물리치료를 받고, 먹고, 누워 천장을 보다 잠드는 것이 나의 일과가 되었다. 그러나 치료를 받고 약을 먹어도 좀처럼 낫지 않는 통증에 나는 오로지 회복, 통증을 줄이는 방법에만 몰두되어 재활 운동과 찜질과 파스 투혼으로 온 하루를 보냈다. 내일은 오늘보다 빠른 기상을 염원하며(누운 자세에서 앉고, 일어나는 모든 동작에 허리의 힘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몰랐다. 웃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건강은 축복이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매일 아침 재활을 위해 산책로를 걷고 있는 나는, 숨이 차게 뛰는 사람들 가운데 허리를 부여잡고 나름의 치열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아직도 간혹 근육 이완제와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며 버티고 있지만 그때보다 꿈은 덜 꾸고, 쓸데없는 생각과 집착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어디에도 기대지 않은 채 두 발로 오롯이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