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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공부 못하면 저 언니처럼 되는거야?

by 이서진

# 공부 못하면 저 언니처럼 되는거야??


“엄마, 공부 못 하면 저 언니처럼 저렇게 되는거야??

6살 여자아이가 나를 보며 엄마한테 묻고 있다.

꼬마의 엄마가 ‘아니!’라고 잘 가르쳐 줄꺼라고 예상했었는데,

‘응,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야 돼!’라고 대답하며 나한테 미안한 듯 바라보더니 두 모녀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 난, 공익근무요원과 함께 트럭(동사무소 관용차량)을 타고 광복절을 맞이하여 관내 전봇대 등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었다. 보도블럭 때문에 관용트럭을 전봇대에 완전히 붙일 수가 없었다. 8월 불볕더위를 나의 땀으로 증명하며, 아가씨가 다리를 쭉 뻗은체 태극기를 낑낑 거리며 게양하고 있었으니 꼬마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

합격하기 어렵다는 시험을 통과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졸지에 엄마 말 안듣고 공부 못해서 ‘저!렇!게!’ 살고있는 사람이 돼 버렸다.



# 첫 근무, 퇴근 후 펑펑 울다.


안정된 직장, 풍족한 공무원 연금, 워라벨이 가능할만큼 적당한 업무량, 갑질.전.. 사람들이 ‘공무원’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단어다.


감히, 건방지게 예측하건데 국민에 대한 투철한 봉사, 지역사회에 대한 헌신을 하기 위해 공무원이 된 사람은 전체 공무원 중 반도 안될 것이다. 대부분 위에 적힌 단어처럼, 적당한 업무량, 정년퇴직까지 일하고, 퇴직 후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선택한 사람이 많지 않을까?

그런데 이건 어느 직업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현실적 직업 체험의 기회가 비교적 적은 우리나라에서 의사, 변호사, 유투버 크레이터의 인기가 높은것도 돈을 많이 벌 것 같고 멋져 보이기 때문 않을까? 적당한 시간, 보상, 사회적 인정...등 다양하지만 본질적이진 않은 이유들로 직업은 선택된다. 타인의 업무는 내가 해보지 않은 이상 잘 모른다.


다시 돌아와, 24살의 나도 그랬다. ‘동사무소 가면 맨날 놀고 있더라. 여자가 가정 생활하면서 일하기엔 공무원이 최고다!’ 라는 부모님의 충고를 곧이 곧대로 믿고 시험을 봤고 감사하게도 한번만에 합격했다. 부모님은 무척 기뻐하셨고 난 너무 빠른 발령으로 어안이 벙벙했다. 2005년 6월에 필기시험을 쳤고 최종 합격자 발표는 8월 초, 임용이 8월 22일에 났으니 두달만에 모든게 끝나 있었다.


2005년 8월 22일...나의 최초 임용일이다. 부모님께서 사 주신 예쁜 정장 투피스를 입고 구청으로 갔다. 구청장님께서 직접 임용장을 받고...‘이것으로 신규 임용자에 대한 임용장 수여식을 마치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리고는 00동, 00동 부르더니 신규 공무원들을 데리고 가 각자의 동사무소 트럭(관용차량)에 태우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새벽 인력시장 같았고, 생선을 경매하는 어시장 같았다. 어시장에서 고등어, 갈치를 경매해도 이보다 빠르고 시끄럽진 않을 것이다.


내가 발령받은 동사무소는 바로 구청 길 건너편에 있어서 트럭을 타지 않고 걸어서 갔다.았다. 동장님과 직원들에게 신규공무원 신고 인사를 드렸다. 동장님과 선배님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감사했다.


딱! 거기까지 좋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난 민원대에 바로 앉혀졌다. 신분증을 든 손들이 여기저기서 보였고, 허둥지둥 거리는 나에게 투덜거리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욕하고 싶은건 나였다. 주민등록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민원서류 발급하는 시스템도 처음 본 신규직원에게 증명서류를 발급하라니... 최근에 발령받는 신입들은 임용 전 신규교육을 이수받고 배치되지만, 그때만해도 1년~2년 근무하다가 눈치보면서 신규교육을 받았다. 20세기에 이렇게 얼렁뚱땅 업무가 진행되는 곳이 있었다니...너무 당황스러웠다. 허둥지둥 바쁘게, 여기저기서 원망과 욕을 들으며 6시까지 근무하고 나니 녹초가 됐다. 내가 상상했었던 깔끔한 사무직, 멋진 커리어우먼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는 곳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선배님들의 모습도 지쳐 있었다. 저 분들도 나와 똑같은 과정을 계속 겪고 있었겠지... 그제서야 사람들에 흔히 말하던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불친절하다, 활력이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발령받은 첫날, 저 분들의 표정이 내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게 암울했다.

업무 정리 후 퇴근을 하니 길 건너편에서 엄마가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딸의 첫 출근이 걱정돼서 오셨겠지... 도대체 몇 시부터 기다리셨던 것일까?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정신없이 보내며 하루종일 욕 듣다가 죽을때까지 내 편인 엄마를 만나니 눈물이 났다. 엄마를 보자마자 ‘앙’하고 울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공무원 조직에 아쉬운 것이 있다. 바로 ‘업무 인수인계’이다. 공무원 조직은 군대와 같아서 어디든 가라고 명령이 떨어지면 무조건 가야된다. 번복이 없다. 그리고 워낙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이동시키려다 보니 전보 발령 후 국에서 과, 그리고 팀, 담당업무가 정해지는 것은 보통 발령일 하루 전이다. 인수인계라는 것이 시스템 상 불가능하다. 예를들어, 금요일 오후 6시가 넘어서 인사전보 발표가 나면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새로운 곳으로 출근해야 된다. 금요일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꼬박 밤 세워 그간의 업무를 정리한다지만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최근에는 ‘전자적 인수인계’라는 것도 생겼다지만 절차만 한 가지 추가 됐다는 것이지 물리적 시간이 늘어난 게 아니므로 현안사항 몇 가지, 월별, 주별 해야되는 업무 리스트만 정리하기도 바쁘다. 그 외 세부적인 사항은 몸으로 부딪히고 여기저기 혼나며 배운다. 보통 업무에 따라 관련 된 법규정만 2~3개, 그 법에 따른 시행령과 시행규칙, 세부지침까지 익히려면 발령 받고 3개월 동안은 야근 각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사항을 겨우 익혀, 현안을 챙기고 문제점을 도출 해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제도개선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면 타부서로 전보된다.

아무리 외부에서 공무원에게 업무의 전문성보다 부정부패 없는 청렴함을 더 기대한다고 쳐도 당장 업무 익히기에도 급급한데 창의적인 아이디어, 혁신은 그 업무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걸 간과한 것 같아서 매우 아쉽다.

인사발령에 대한 불만이 매우 커서 긴박하게 발령을 내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최소한의 인수인계 할 시간은 확보할 수 있게 발령 내주면 좋겠다.



** 지방행정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저의 생각을 적은 글입니다.

지역, 직렬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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