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사랑하는 남편보다 든든한 평생직장이 있다.
결혼생활 10년 동안 된장찌개 딱 한번 끓여본 내가 남편에게 큰소리 칠 수 있는 것도 바로 나의 직업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여자 직업으로 그럭저럭 괜찮다고 알려져 있고, 흔히 '철밥통'이라고 말하는 공무원이다. 코로나 19라는 난리굿에도 안정적으로 가정생활을 할 수 있고, 아이에게 저렴한 학습지라도 끊기지 않고 계속 시켜줄 수 있어서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변화에 설레기보단 익숙함이 편하며, 활발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조용히 책 보는 게 좋은 나를 16년 동안 내쫓지도 않고 때 맞춰 진급도 시켜주니 나에겐 황송한 직업이다.
하지만 철밥통은 없어지진 않지만 찌그러지고 녹이 슨다. 녹슨 음식을 오래 먹어서 그런지 매년 암으로 사망하거나 휴직하는 동료들이 늘고 있다. 갑상선암, 자궁경부암, 유방암... 종류도 다양하다. 거기에 극심한 민원으로 인한 우울증까지...
2021년만 해도 급성 심장마비로 인해 아이들 세명을 놔두고 하늘로 간 선배, 유방암에 걸려서 막 휴직에 들어갔다는 동기 언니, 바빠서 연락도 못하고 지내다가 오랜만에 연락해보니 자궁경부암으로 쉬고 있다는 언니, 벌써 세명이다. 마흔 살이 지인을 떠나보내는 데 익숙한 나이는 아닐 텐데... 씁쓸하다.
자꾸 슬픈 소식을 들어서인지,
아님 천식, 갑상선, 류머티즘 염증약... 등 갈수록 매일 먹어야 되는 약들이 늘어서인지
그것도 아님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우리 아들이 내년에 벌써 10살이 된다는 사실에 뜬금없이 놀라서인지,
최근 나도 든든한 버팀목이던 직업이 내 목을 조르며 날 숨 막히게 한다.
사실 이번 글을 적고자 마음먹었을 때,
먹고사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이 시국에 이런 글이 얼마나 꼴불견으로 보이게 될지, 또 그분들에게 얼마나 많은 욕을 먹을지 예상된다.
언제나 직장 얘기를 하면 공무원이 지기 때문이다. 주거니 받거니 해도 마지막은 정해져 있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 그것도 못 버티고 무슨 일을 하겠냐! 그래도 너희는 연금이 있잖아."
마지막 한 방을 맞고 나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
그리고 그만둘 수도 없다. 직업을 바꾸는 게 누구에게든 쉬운 일은 아니니깐, 돈을 벌어야 되니깐, 우리 아들 공부를 시켜야 되니깐, 이게 내 생업이니깐... 비록 그만둘 수 없어 다니지만 힘이 들고 지친다
그렇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쉽고 부끄럽지만, 내가 적은 이 글은 극소수의 분들만 봐주시므로...(황송하게도)
브런치를 통해 발행했던 글에 댓글이 하나도 달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내 마음이 더 다칠까 봐, 이 글을 발행할 때는 댓글 추가 기능은 넣지 않기로 했다.
자기 위안이지만, 쉴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항상 칼퇴근으로 오해를 받으면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해왔지만, 특히 작년 한 해는 너무 힘들었다.
주말 이틀을 연달아 마음 편히 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새벽 7시에 집을 나서면 저녁 10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왔으니 그간 살림이 얼마나 엉망이 되는지 아들은 어떻게 자라는지, 내 몸은 얼마나 망가지는지 돌아볼 수 었었다.
그래서 잠시 쉬기로 결심했다. 민간보다 휴직이 보장돼 있지만 공무원 조직도 직장이고, 업무가 끊어지므로 직원의 휴직을 반길리 없다.
나는 직장에서의 좋은 평판과 진급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드디어 나만의 168시간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