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감동적이라 열 번도 넘게 보고 있는 나의 최애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주택복권 당첨으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정팔이 엄마'는 아들의 대학 불합격과 심장수술로 인해 단전부터 확! 끓어오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쥬단학 아줌마', '아모레 아가씨'를 집으로 부른다.
그 '쥬단학 아줌마'를 나도 실제로 봤었다. 같은 아파트 3층에 사는 마음 넓었던 아줌마는 '쥬단학 아줌마'에게 마사지 서비스를 받으셨는데, 드라마 속 정팔이 엄마처럼 우리 엄마를 한 번씩 불러주셨다. 아줌마들은 세상 편하게 누워서 마사지를 받았고 난 수건을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식혀 스팀타월을 만들어드리곤 했다. 3층 아줌마가 이사 가신 후 쥬단학 아줌마는 우리 동네에 안 오셨지만 쪼롬이 누워서 행복해했던 엄마와 아줌마들의 얼굴, 어린 내게 로션 하나 발라주며 따뜻한 가재 수건을 덮어줬던 쥬단학 아줌마의 손길은 여자에게 화장품은 '행복함과 따뜻함'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30년 전, 우리 집 여자들은 동네에 있었던 작은 화장품 가게에서 화장품을 구매했다.
당시 학생이었던 언니와 나의 화장품은 2종! 스킨, 로션... 엄마는 조금 더 꾸며야 되니깐 '크림, 립스틱' 두 가지가 추가 된 4종이었다. 단출했지만 백옥 같은 피부를 갖고 싶은 바람은 그때도 여전했다. 피부에 '쏙쏙' 잘 스며들라고 어찌나 내 피부를 '톡톡' 두드렸었는지... 얼굴이 하얗다 못해 빨갛게 되곤 했었다.
25년 전, 우리 집 여자들은 더 이상 동네 구멍가게에서 화장품을 사지 않게 됐다.
오래 기다렸던 아빠의 진급 소식을 들은 엄마는 언니와 나를 데리고 힘차게 이마트로 향했다. '이자녹스' 매장에 도착 한 엄마는 스킨, 로션, 크림이 함께 있던 3종 세트를 당당하게 고르시더니 아이크림도 샀다. 언니와 내가 쓸 수 있는 선크림도 사주셨다. 이마트에서 화장품을 샀던 그날, 언니와 나는 우리 집도 드디어 잘 살게 됐다고 기뻐했다. 이마트는 화장품이 막 쌓여있던 동네가게가 아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진열장, 환한 조명 속 화장품을 샀던 그날! 우리 집 여자들은 모두 신분 상승의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다시 10년 후, 나와 언니는 아가씨가 됐고 취직을 하게 됐다.
20대 중반에 커리어우먼이 된 우리 자매는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우리 자매의 화장품은 백화점 라인으로 Upgrade! 됐다. 당시 나의 최애 브랜드는 '랑콤'과 'SK2'였다. SK2는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좋았고, 랑콤은 엄마 때문에 좋아했다. 아주 오래전, 엄마가 결혼하기 전부터 있었던 명품 브랜드 '랑콤!'
엄마는 '랑콤' 광고를 볼 때마다 결혼 전 잘 나가던 아가씨 때 썼던 화장품인데 정말 좋았다며 그 시절을 종종 추억하셨다. 내가 취직한 후, 엄마에게 가장 먼저 사드린 선물도 바로 '랑콤' 화장품이었다. 엄마에게 랑콤 화장품을 안겨드렸던 그날, 엄마와 같은 여자, 엄마를 이해하는 딸이 된 것 같아서 혼자 뿌듯했다. 엄마는 딸들이 결혼 후에도 좋은 화장품만 바를 수 있기를 바라셨다.
그때도 난 색조화장은 거의 안 했었는데, 기초화장품은 무조건 좋은 것으로 발라야 된다고 생각했다. 돈 버는 아가씨는 의무적으로 피부에 투자를 해야 된다고 믿었다. 피부에 스며들면 발랐는지 표도 안나는 스킨, 로션 구입에 진심이었다. 돈을 아끼지 않았다. 화장대에 진열된 고급스러운 화장품들만 봐도 예뻐진 것 같았다. 무척 마음에 드는 나만의, 내가 만든 화장대였다.
그 후로 5년,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운 좋게 나도 결혼을 했다.
신혼이었을 때 남편이 내게 말했다.
"서진이는 장모님 닮아서 피부는 타고났다니깐! 아무거나 발라도 예뻐~ 예뻐, 예뻐~!!"
'남편이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뭐, 이 정도면 피부가 좋은 편이긴 하지~!'라고 나는 남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때는 내가 순진했었다 ㅠㅠ)
결혼을 하니 결혼 전에는 꿈도 못 꿨던,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 있었다. 남편과 여행도 다니고 싶었고, 집도 예쁘게 꾸미고 싶었고, 무엇보다 나의 둥이에게 뭐든지 다 해주고 싶었다. 화장품에 비싼 돈을 들이는게 아까워졌다. '어차피 난 피부가 좋으니깐...'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다시 이마트로 갔다. 다시 이마트에서 화장품을 고르고 있는 날 보던 엄마는 안타까워했다. '이제 너도 엄마가 됐구나...'라고.
지금의 난, 화장품을 사러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다.
'마지막 찬스입니다! 1세트 사면, 2세트 공짜!!'
이런 건 빨리 주문해야 된다. 이제 난 TV홈쇼핑에서 화장품을 산다. '어느 정도 검증이 됐으니 홈쇼핑에 나왔겠지... 품질만 좋음 돼!'라고 생각한다.
내 화장대는 다시 초라해졌다. 솔직하게 말하면, 화장대가 없다. 안방 옆 부부 화장실 속 진열장 중 한 줄, 또 그 한 줄 중 절반이 나의 화장대다. 화려해지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 나의 화장대는 그 옛날 초라했던 엄마의 화장대와 똑같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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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화장대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뭔가 허전하다고 느낄 때면 조용히 '올리브영' 어플을 켠다. 올리브영에서는 자유롭다. 샴푸도 사고, 마스크팩도 사고, 걸그룹이 바른다는 립스틱도 산다. 이것저것 사며 스트레스를 풀어봐도 5만 원이면 충분하다. 그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깐 올리브 영 멤버십의 최고 등급인 '골드 올리브'가 됐다. 못난이인 내가 드디어 화장품 가게의 VIP가 된 것이다.
동네 화장품 가게, 이마트 화장품 매장, 백화점 명품 브랜드샵, 다시 이마트 화장품 매장, 홈쇼핑, 로드샵...
그 먼길을 돌고 돌아... 나이 마흔에... 드디어 로드샵의 VIP가 됐다.
아내의 피부는 남편의 재력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20대 였을때, 언니들이 '서진이는 젊어서 피부가 좋네~'라고 말하면 대답은 안 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바로, 나이에 맞는 얼굴을 가꾸면 된다!
바비인형처럼 칼로 깎은 듯한 미모를 갖는 건 무리다. 20대에도 안됐던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예쁠 필요가 없는 마흔살 아줌마다. 심리적 위안이 되는 40이라는 숫자가 너무 감사하다. 굉장히 커다란 방패같다.
중년 여성다운 여유로운 마인드!
언제나 편안하고 온화한 인상!
많이 웃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
지금보다 더 예쁘고, 따뜻한 미소를 가지게 될 50살을 위해 살고 있는 40살의 내가 자랑스럽다!
왜냐면...나는 올리브영 VIP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