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9살, 둥이입니다.
며칠 전 엄마에게 조금 죄송했던 일이 있었어요. 제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지만 엄마가 조금 서운하셨을 것 같아요. 아니에요, 엄마는 작은 글자가 많은 책도 읽고, 세상에서 저를 가장 사랑한다고 하셨으니까 이번에도 제 마음을 다 알고 이해해 주셨을 거예요. 그리고 저도 어쩔 수 없었다고요ㅜㅜ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도대체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정확하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매일 늦게 오고 주말에도 자주 회사에 출근하셨습니다. 천둥 번개가 치는 깜깜한 밤에 저를 놔두고 급하게 출근하던 엄마의 뒷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렇게 바쁘던 엄마가 작년 여름부터는 출근하지 않고 집에 계속 계십니다. 할머니는 엄마가 몸이 아파서 쉬어야 되니 엄마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저보고 많이 도와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엄마와 저는 항상 함께였습니다. 저랑 늘 함께 있고 싶어서 회사를 잠시 쉰다는 엄마는 매일 다니는 등굣길에 있는 나무도 하늘도, 심지어 땅에 떨어진 낙엽도 모두 예쁘다며 사진을 찍곤 하셨습니다. 엄마는 햇님이 있는 평일 낮에 제 손을 꼭 잡고 길을 걷는 게 꿈만 같다고 했습니다. 물론, 저도 좋았습니다. 할머니랑 함께 있는 것도 무척 즐거웠지만 다른 친구들이 엄마와 함께 있는 게 부러웠거든요. 그런데 이젠 학교 교문 앞에 엄마가 있고, 학원 봉고차가 내리는 곳에도 엄마가 있습니다. 저를 씻겨 주는 사람도, 밥을 차려주고 숙제를 함께 해 주는 사람도 엄마입니다. 이렇게 늘 엄마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전 무럭무럭 자라 올해 2학년이 됐습니다. 2학년 형아가 되면서부터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습니다. 학교도 혼자 다니고 학원 봉고차도 혼자 기다린답니다! 심지어 할머니 집에도 혼자 갈 수 있답니다! 엄마와 손 잡고 다니는 동생들은 아마도 형아인 저를 부러워하겠죠?
2학년 되니 저처럼 엄마손을 잡고 학교에 다니던 친구들도 하나 둘, 혼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4월이 지나고 6월, 7월이 되니 대부분의 친구들은 저처럼 혼자 등교를 했고, 덕분에 친구들과 놀고 장난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혼자 할 수 있는 2학년이지만, 영어학원만큼은 예외였습니다. 엄마는 영어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원 건물 1층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학원을 마친 후, 제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엄마는 저를 꼭 안아주시고 뽀뽀를 해줍니다.
그리고 엄마와 손을 잡고 집까지 걸어옵니다. 엄마와 손잡고 집에 오는 길에는 붕어빵과 계란빵을 파는 트럭이 있습니다. 그리고 길에서 과일을 파는 아저씨도 계십니다. 엄마가 붕어빵을 매일 사주 시진 않지만, 맛있는 빵을 먹으며 엄마 손 잡고 하늘과 나무를 볼 수 있는 그 길이 저는 참 좋습니다.
어느 날, 늘 그렇듯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둥아, 영어학원 끝날 때 엄마가 1층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이제 영어학원도 혼자 다닐 수 있어."
"응? 당연히 형아니까 혼자 다닐 수 있지. 그래도 영어학원에서 집에 올 때는 같이 있고 싶은데."
"아니야, 혼자 다닐게. 엄마 혼자 있는 거 좋아하잖아. 책 읽고 있어."
"그래. 고마워~ 잘 다녀와."
그렇게 전 이제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진짜 형아가 된 것 같았습니다.
제가 엄마에게 화를 낸 그날은 비가 왔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하는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영어학원 수업 중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고, 깜빡하고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아서 저는 걱정이 됐습니다. 지하차도를 건너면 비를 많이 맞진 않겠지만 그래도 옷이 젖는 건 싫었거든요. 수업이 끝난 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땡! 1층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곳에는 엄마가 환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둥아, 엄마가 데리러 왔어."
엄마 손에 들려있는 우산은 무척 반가웠지만, 웃고 있는 엄마는 싫었습니다. 마스크에 가려졌지만 찡그러진 웃음이 제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 왜 왔어? 엄마가 없어도 된다고!"
순간, 엄마는 숨 쉬는 것조차 멈춘 듯했습니다.
"비가 와서 우산 갖다 주러 왔어. 친구랑 놀고 싶니?"
방금 전까지 반갑게 보였던 우산을 다시 봤습니다. 비에 젖은 엄마의 손에 들려진 우산을 보니 괜히 마음이 이상해졌습니다.
"응... 친구랑 딱지치기 놀이하기로 했어. 저녁 먹기 전까지는 들어갈게요. 엄마 먼저 들어가세요."
"그래, 비 오니까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서 놀아. 엄마 간다."
그렇게 엄마는 먼저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전 친구랑 딱지치기를 하며 놀았습니다. 전설의 딱지 덕분인지 제가 계속 이겼지만, 기쁘지가 않았습니다. 엄마 때문입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귀찮았습니다. 지금은 마스크를 껴서 조금 괜찮지만, 엄마가 웃거나 걷거나 말을 하면 친구들이 계속 물어보는 게 너무 귀찮았습니다.
"너네 엄마는 왜 그래?"
"둥아, 너네 엄마는 왜 말을 이상하게 해?"
"왜 얼굴이 삐뚤 꺼려? 아빠도 이상해?"
이것저것, 다양하게 묻는 친구들과 달리 제 대답은 언제나 한 개입니다. 엄마가 알려준 거예요.
"응, 엄마가 어릴 때 많이 아파서 그런 거야. 흉터 같은 거지. 하지만 지금은 건강하고 회사도 잘 다녀!"
대부분의 친구들은 '응'대답하며 더 묻지 않지만, 간혹 "병원을 다른 곳에 가봐야 하지 않아? 옮는 거 아니야? 언제까지 아파?"라고 계속 물어보는 친구는 참 밉습니다.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몰라서 머리가 하얘지고 괜히 화가 나기도 합니다.
분명히 엄마는 한 가지 대답만 알려줬는데, 왜 내가 이런 질문을 받아야 되는 건지, 엄마는 왜 어릴 때 병원을 잘 안 다녔던 건지... 화가 납니다. 그러다가 할머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둥아, 엄마가 태어날 때 무척 많이 아팠어. 아주 작은 아기였을 때 몸에 주삿바늘을 주렁주렁 달고 살았단다. 둥이 엄마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으쌰 으쌰! 힘을 아주 많이 냈단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렇게 예쁜 둥이를 보려고 엄마가 그 시간을 버텼던 것 같네. 엄마한테 '사랑해~'라고 자주 말해 줘. 엄마한테는 둥이의 사랑이 가장 좋은 약이거든."
이 기분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크게 잘 못 한 것은 없는데 괜히 미안하고... 지금도 많이 피곤해하고 하루 종일 온갖 약을 먹는 엄마가 밉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밖에 없는 우리 엄마입니다!
오늘은 조금 일찍 친구와 헤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평소와 똑같았습니다. 아빠가 늦게 퇴근하셔서서 그런지 유난히 조용한 저녁이었습니다. 조용히 저녁을 먹고 일기를 적었습니다.
잠잘 시간이 됐습니다. 커다란 침대에 엄마와 나란히 누웠습니다. 엄마는 제 똥똥한 배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둥아, 엄마는 괜찮아... 사랑해. 엄마는 괜찮아... 사랑해."
뭐가 괜찮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엄마의 '사랑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참 따뜻합니다. 오후부터 괜히 답답했던 마음이 스르르 녹는 것 같더니 몸이 편안해졌습니다. 이제 자야겠네요...
"엄마가 제일 예뻐. 엄마 사랑해... 잘 자~"
제가 조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엄마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예쁜 우리 엄마는 다 알고 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