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사랑 확인법♥
어제, 코로나 백신 접종을 했습니다.
덕분에 어제 하루는 무척 어수선했습니다. 친정부모님과 남편에게 전화를 한 시간에 2~3통씩 받았기 때문입니다.
접종을 맞기 전에는,
"오후 5시라고 했지? 컨디션은 괜찮아? 기분은? 병원에 갈 때 전화 줘. 주사 맞고 전화해야 돼. 참, 접종 후 샤워 못 하니깐 미리 씻고 가야 돼."라고 호들갑이더니, 접종이 끝나니 더 야단입니다.
"아프진 않아? 집에 바로 가서 쉬고 있어! 기분은 괜찮아? 일찍 퇴근할게. 맛있는 거 사갈까? 밤에 잘 자는 게 중요한데, 아침에 꼭 전화해야 돼. 둥이는 손서방한테 좀 보라고 하고 쉬어."
오히려 일흔이 다 되신 친정부모님과 저보다 열두 살이 많은 남편은 조용히 접종을 마쳤습니다. 영양제 한 대 맞듯이 시크하게 맞으시더니 정작 제가 접종 예약을 마친 10여 일 전부터는 계속 호들갑이십니다. 당신들이 맞을 때보다, 갓난아기였던 둥이가 첫 예방접종을 맞으러 갈 때보다 더 걱정이 많았습니다. 폐기능이 약하고, 천식이 심하다 쳐도 나이 마흔에, 이렇게 주사 하나 맞는 걸로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게 되니 참 민망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둥이를 임신했을 때도 이랬던 것 같습니다. 몸도 약한데, 출산예정일 열흘 전까지 출근했던 저를 안쓰러웠던 친정부모님의 감독(?)과 마음씨 착한 남편 덕분에 살림은 오롯이 남편 몫이 되었으니까요^^ 코로나 백신 덕분에 그때가 떠올랐고, 생뚱맞게도 불평 없이 살림에 전념(?)해준 남편에게 뒤늦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유난스러운 가족들의 걱정 덕분에 다행히 아무런 통증 없이 24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 부작용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겠네요!
입맛이 달라졌고, 눈은 살짝 더 이상해 진 것 같습니다.
술과 친구를 무척 좋아하셨던 아빠는 술 약속이 무척 많았습니다. 일주일 7일 중 8일을 늦게 들어와 엄마 속을 무척 썩였습니다.(밤에 잠도 안 주무시면서까지 24시간을 추가로 더 만들어 남들보다 더 오~래 술을 마신 아빠입니다-.-) 하지만, 언니와 저는 아빠의 늦은 귀가를 기다렸습니다. 바로 딸들에게 둘러싸여 와이프에게 혼나지 않기 위한 아빠의 작전 때문입니다. 아빠는 양손 가득 빵을 사 오셨는데 그중 저는 노란색 슈크림빵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우리 동네 빵집 특유의 달달함과 쫀득쫀득한 노란 크림~! 언니와 저는 아빠가 사 오신 빵을 먹느라 기뻐했고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어이없는 듯 늦게 들어온 아빠를 용서하셨습니다.
동네빵집이 없어지고 프랜차이즈 빵집이 생기고, 그 프랜차이즈 빵집 대신 소규모 수제빵집, 파티시에가 있는 고급 빵집이 생겼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멋지고 비싼 베이커~리들이 많이 나왔지만 어릴 때 먹었던 쫀득 달콤한 슈크림 빵맛의 그리움을 지울 순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은 후 이상반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5분 동안 진료실 앞에 앉아 있는데 그 촌스러운 노란 빵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병원 건물을 나서자마자 제 발은 자연스럽게 빵집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빵집 앞에 도착한 저는 실망했습니다. 빵집이 폐점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빵집으로 갔습니다. 그곳도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지하상가에 있는 빵집도 폐점했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프랜차이즈 빵집 3곳이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폐점한 3곳의 빵집은 모두 캄캄했고, 유리창엔 '개인 사정으로 가게 문을 닫습니다...'라고 적힌 종이만 붙어 있었습니다. 물론, 빵집 사장님들이 폐점한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요... 최근에 개업 해 손님이 많은 수제빵집 탓일 수도 있고, 코로나 탓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이 경제적 자유의 경지에 도달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전 예전에 자주 갔던 가게들이 폐점한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정말 가까운 곳인데... 저와 가까이 있는 사람 중 이렇게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었어도 못 챙겨줬겠구나... 싶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줄로만 알고, 먼저 연락하지 않았던 저를 반성했습니다. 여름이 지나가기 전, 학교 친구들과 함께 일했던 동료들 안부를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집에 들어갔어?"
"아니. 근데 백신 때문인지 좀 이상해."
"어디가? 바로 병원에 가봐"
"그게... 손가락 빵이 너무 먹고 싶어. 빵 사려고 근처 빵집에 갔는데 다 폐점을 했네 ㅠㅠ 가게 사장님들 다 좋으셨는데... 기분이 좀 이상해"
"코로나 때문에 다들 힘들다더니. 큰일이네... 그건 그렇고, 백신 맞음 집에 바로 가야지. 내가 사갈 테니까 집에 들어가 있어. 네가 좋아하는 손가락 빵 맞지? (옛날 슈크림빵은 손가락 모양이 있어서 전 아직도 '손가락 빵'이라고 부릅니다,)"
"응. 고마워^^"
어제저녁, 남편은 퇴근길에 저와 약속한 손가락 빵을 사 왔습니다. 그것도 제가 좋아하는 빵집에서 사 왔습니다. 회사 근처에 1955년부터 운영했던 유명한 빵집이 있는데 딱 제가 어릴 때 먹던 빵 맛 그대로여서 그 집 빵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맛있게 먹는 저를 보고 남편이 말했습니다.
"이 빵이 그렇게 맛있어? 그런데 서진아, 이건 백신 부작용이 아닌 것 같은데; 네 몸이 더 커지려고 하는 거 아니야?"
"아니, 내가 그 전엔 전혀 생각이 안 났는데 주사를 딱! 맞자마자 떠올랐다니깐!"
"그래그래, 부작용 맞다! 맛있게 먹어~"
그런데, 갑자기 제 눈이 이상해진 것 같았습니다. 남편이 참 예쁘게 보였습니다.(심각한 부작용인 듯ㅜㅜ)
백신으로 인해 와이프가 아플까 봐 며칠을 걱정해 주고, 퇴근 후 부리나케 빵까지 사서 집으로 온 남편이 참 고마웠습니다. 꾀병인 줄 알지만 모른 척 눈감아주는 남편은 아픈 척하는 저를 눕혀두고선 설거지, 화장실 청소를 하더니 둥이랑 함께 책도 읽어주네요. 임신 만삭 때 저보다 6개월 일찍 임신한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친구 엄마가 저에게 해주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여자는 무조건 모른다카고 아프다 하고 해야된디. 집안 살림도 먼저 하려고 하지 말고 남편이 해주면 잘한다, 고맙다 칭찬만 해야 돼. 임신했을 때 확~ 잡아야 된다! 서진아, 알긋제?"
아마도 친구 어머니께서 지금의 제 남편을 보신다면, 만족하실 것 같다는 생각도 뜬금없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전 백신 접종을 무척 걱정했었지만, 다행히 아무런 느낌도 이상도 없이 잘 지나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이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 번씩 이런 기회를 핑계로 사랑을 표현하고 그 사랑을 느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쁜 꽃과 반지가 아닌, '백신 접종'을 통해서 사랑을 확인하는 게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요^^
오랜만에 '오랜만이야, 건강하게 잘 지내지??'라며, '건강'을 핑계 삼아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벼운 질문에 따뜻한 온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이상으로 저의 코로나 백신 접종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