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 5급, 천식이 심한 저는 산을 오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앞, 뒷분들의 도움과 기다림 덕분에 겨우겨우 오른 그곳!
색색거리며 겨우 오른 산 정상!
'야호~'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탁 트인!
푸르고 시원한 청량한 산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곳은 생명이라고는 전혀 없을 법한,
새카만 죽음의 공간이었습니다.
방연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매캐한 연기로 숨쉬기 힘들었고 목도 많이 따가웠지만
열심히 잔불 정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거센 바람 탓에 여기저기서 불씨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발 밑은 뜨겁고, 눈에는 불길이 보이고... 무서웠습니다.
결국, 다시 일어나는 불씨를 잡기 위해 소방헬기가 투입됐습니다.
산업 중인 산림청, 소방공무원, 지자체 공무원들이 많았지만
산불진화가 최우선 목적이었기에 사람들 위로
거센 물이 쏟아졌습니다.
여러 대의 헬기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물,
매우 쌘 물살에 옷과 신발이 다 젖어 찝찝하고 추웠지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열심히 진화작업을 했습니다.
하필 그날 생리 중이었던 저는 바지가 물에 다 젖어
엉덩이 부분이 난리가 났었지만 첩첩산중 속 화장실도 없고...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정말 전쟁이 난다면, 곤란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엉덩이를 덮을만한 긴 외투만 믿으며 계속 일했습니다.
잠시 옷을 말리기 위해 쉬던 중,
불에 타고 물에 젖어 버린 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말 시커멓게 다 타버린 나무.
제 몸이 다 타버릴 것을 예상하면서도
도망가지 못하는 나무의 마음을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자신이, 친구 나무가, 가족 나무가...
심지어 아주 어린 나무가 타버리는 것을
묵묵히 바라봐야만 되는 나무...
시뻘건 불길이 치솟고,
산소를 다 앗아가 버릴 연기 속에서도
우두커니 서 있는 것 외 할 수 없는 나무.
분명히 살아있음에도
가만히 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무!
인간의 매우 좁은 시선으로 보면
사람들은 영리하고 재빠르게 이리저리 불행을 피해 다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말 커다란 재해 앞에서는
나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명을 이루고 과학기술 덕분에 많은 것을 극복했다고
자랑하지만,
수천 년 동안 인류를 두렵게 한
산불, 지진, 해일, 가뭄, 홍수, 태풍, 폭염, 폭서...
그 어떤 것도 우리는 극복하지 못했으니까요.
다가오는 운명을 그저 경험하는 것!
웃을 때도 있고, 울 때도 있고, 분노할 때도 있지만
그저 우리에게 허락된 감정을 우두커니 느끼는
우리도 나무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도, 나무도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살아가야 되고요.
죽을 것 같이 힘든 순간, 다시 눈에 보이는 아주 희미한 희망!
어제, 오늘 반가운 봄비가 내립니다.
모든 것이 타버리는 상황을 바라만 봐야 되는 나무의 비통한 심정과
노력이 통하지 않는 억울하고 분한 사람의 마음이...
그 무수히 많은 눈물들이 모여 비가 됐습니다!
입산통제 중인 산속 어딘가에서
엄마, 아빠 나무가 다 죽은 그곳에서,
혼자서 용기 내고 있을 어린 아기 나무... 에게
뿌려질 한 줄기 빗물, 아주 작은 희망과 위로!
슬픔을 희망 삼아 다시 살아가는 것!
쉽지 않지만, 그게 '삶'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