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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May 14. 2022

코로나 덕분에 알게 된 종격동 종양!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 은희경 <새의 선물> -

은희경 작가님의 글처럼,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앞 뒤로 이어진 시간의 총합이 바로 인생일 것입니다.

한참이 흐른 후에야...

 '아, 이러려고 그때 그랬었구나...' 불현듯 혼자 조용히 깨달으며 웃음 짓지요.

결국, 우리는 허탈한 웃음을 짓기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요?


삶 자체가 농담이라 그런지...

얼마 전까지 죽을 듯이 떠들썩했던 코로나는 '마스크'한 장만을 우리에게 남긴 채 금세 잊히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잊히기 전 기승을 부리던 지난봄, 저 역시 코로나에 확진됐었습니다.

https://brunch.co.kr/@lovebero/335

2주간의 입원, 3주간 통원치료로 코로나 후유증이 말끔히 낳은 것 같았던 어느 날,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다 낳은 것 같으니 끝으로 폐 CT 한번 찍어볼까요?"

천식치료로 수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교수님께선 엑스레이만 찍자고 했는데, 웬일인지 그날은 폐 CT를 찍자고 하셨습니다.

일주일 뒤, CT 촬영 영상 화면을 보시던 교수님께서는 폐는 깔끔한데 척추 옆에 뭔가 이상한 게 보인다며, 조영술 CT를 다시 찍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체장애로 동작 정지가 어려웠기 때문에 몇 분 동안 가만히 누워있는 게 무척 어렵습니다. 지난주 촬영 때도 영상 촬영실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겨우 촬영을 마쳤는데 다시 찍어야 된다니... 걱정보다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또다시 야단법석으로 CT촬영을 마치고 다시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병원에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고 싶어 하시던 엄마를 뒤로한 채(정말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혼자 병원에 갔습니다.

호흡기내과 교수님께서는 얼굴을 찡그리며 영상화면을 보시더니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이 부분 보이시죠?"
시커멓고 하얗다는 것 외, 어디를 찍은 건지 뭘 나타내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말씀드리는 제가 참 까막눈 같았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디로 연결하지? 폐암?' 이라며 혼잣말을 하시더니 바로 흉부외과 고수님께 협진의뢰를 요청하셨고 다행히 일정이 맞아 흉부외과 외래 진료를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한참 동안 CT화면과 수년간 해당 병원에서 진료받았던 저의 내역 등을 보셨습니다.

  "여기 종양이 이렇게 큰 데 아무 느낌이 없으셨나요?

  "원래 허리가 기형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파도 그것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척추 바로 옆에 7cm가 넘는 종양이 있습니다. 화면상으로 봐선 악성은 아니라 다행이지만 워낙 종양의 크기가 크니 제거 수술은 시급합니다. 잘못하면 하반신 마비가 될 수 있으니 보호자와 의논 후 가급적 빨리 수술일정 잡으러 다시 와 주세요."

일단 폐암은 아닌 것 같다고 해 매우 안심이었지만, 겨우 퇴원했는데 또 입원을 해야 된다니... 또 멍해진 저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는,  해석 불가인 영어가 잔뜩 적힌 진료 확인서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참 후에 번역기를 통해 진료 확인서를 해석해 보니 병명은 '종격동 종양' 치료계획은 '절제적 수술'이라 적혀있었습니다.


그냥 또 멍... 하게 며칠을 출퇴근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빨리빨리 행동을 해야 될 텐데... 멍멍이도 아니고 계속 멍~해지는 제가 저도 참 답답했습니다 ㅠㅠ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여기저기 인터넷 자료를 검색해봤습니다. 종격동 종양은 흔하지 않은 병이라 메이저급 병원에서 꼭 진료를 받아야 된다는 글을 참고해 서울 메이저급 병원에 다시 진료예약을 했습니다. 한 달 뒤로 겨우 예약이 잡혔습니다.


한 달 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다리는 것 밖에 없는 시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은 생각이 많아지지요. 별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 않지만 한 두 달 전의 일들이 모두 필연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볍게 앓아도 됐던 코로나를 그렇게 야단법석으로 앓게 됐고 평소 폐 엑스레이만 찍던 교수님께서 하필 그날은 CT를 찍자고 하셨고, 담당 진료과도 아니라 못 보고 지나쳤을 수도 있는 그 하얀색 점이 교수님 눈에 띄었다는 것... 우연들이 모이고 모여 알게 된 게 종양이라니 웃음이 났습니다. '다른 좋은 일일 수도 있었는데, 하필 왜? '라는 원망이 들었지만 은희경 작가님의 글처럼 그 이유를 캐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선 암에 걸린 것보다 종양만 제거하면 되니 감사한 일이고, 또 다른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갑자기 코로나가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CT를 찍어보지 않았을 테니 종양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테니까요. 당장은 아픈 일이 조금만 지나면 감사하게 생각되는 게 참... 재밌습니다. 역시, 삶은 농담에 희롱당하는 것인가 봅니다.


인생은... 참 웃픕니다.



톨스토이 <인생독본>

-  병은 대부분의 경우 육체의 힘을 빼앗아감으로써 정신의 힘을 자유롭게 한다. 자신의 의식을 정신적 영역으로 옮긴 사람에게 병은 행복이 될 수 있다.
- 사후에도 불멸하는 삶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병에 걸리는 것은 단지 하나의 삶에서 다른 삶으로의 이행, 그것도 바람직한 쪽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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