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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의 꿈.

by 이서진

그녀는 어머니의 어릴 적 꿈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어머니에게 관심을 많이 갖지 못한 것 같아서 죄송하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출산 시 산고로 인해 한 동안 반신마비였다. 그리고 장애아를 낳았다는 충격과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진 실망감으로 내내 힘들어하다가 결국 뇌종양에 걸렸다. 어머니가 병원에 있었을 때의 꿈은 몸 아픈 딸을 당신의 손으로 직접 키우는 것과 그 딸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었다. 아파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바빴다. 귀하게 자랐던 유년시절이 덧없이 느껴질 만큼 고되게 보냈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그 시절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았던 고운 손은 안 해 본 일이 없어 거칠어졌다. 일반학교, 학원에서 그녀의 딸을 거부하면 몇 날 며칠을 빌고 빌어 결국 필요한 교육을 그녀가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녀가 혹시라도 뒤처질까 노심초사하며 병원 치료, 운동, 국영수 교과목 외 교양 관련 학원까지 보내며 열심히 돌보고 가르쳤다. 분명히 정말 기적이 있어서인지, 그녀 어머니의 꿈이 이뤄졌다. 아마도 자신보다 더 아픈 어린 딸을 돌봐야겠다는 집념이 그녀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시켰으리라… 분명히 뇌종양 판정을 받았음에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취직했을 때, 딸이 아들을 낳았을 때 본인이 더 기뻐하고 가슴 졸이며 꿈을 이루고 있었다.


그녀의 꿈은 수녀님, 컴퓨터 프로그래머, 전업주부였다. 그녀가 보기에 이 세 가지 직업은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타인과의 교류가 없어도 돼 보였다. 굳이 위 세 가지가 아니더라도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관계의 부담이 없는 직업이면 뭐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꿈에 대한 절실함이 부족해서인지 현재 그녀의 직업은 위 세 가지 중 어떤 것과도 상관없는 평범한 사무직이다. 본인이 위법 혹은 비리 행위를 하지 않으면 안정된 직장이다. 그런데 그녀에겐 그 부분은 큰 매력이 되지 않는다. 우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가 기본 근무시간이며 야근과 주말근무, 비상근무가 늘 전제돼야 해서 워라벨은 꿈도 꿀 수 없다. 군대와 비슷하다. 어떤 일을 하든 의미를 찾으면 안 된다. 우선 반드시 해 내야 된다. 일이 끝나고 한참 후에 그녀가 했던 일의 의미를 알게 된 경우도 있었지만, 기계적으로 일을 해야 됐다. 의미 없이 지나간 시간들이 그녀에겐 늘 안타까웠다. 그 시간 속에는 몇 가지가 포함돼 있다. 그녀의 청춘, 그녀 어머니의 소중한 노후, 무엇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둥이와의 어릴 적 추억… 그런 소중한 시간이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월급이라는 보상이 주어지지만 월급이 잠시 머물고 간 통장을 보고 있으면 씁쓸해진다. 그녀 삶의 방향이 큰 흐름이 잘 못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당장 그 돈이 필요하니까 그만둘 수는 없다.


하지만 둥이를 키우면서 그녀에게 회사에 다니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얼마 안 되는 월급보다 사회에서 그녀의 위치가 필요했다. 둥이가 어렸을 때, 그녀가 남편 없이 둥이와 외출하면 두 세배는 힘들었다. 예민하게 타인의 시설을 느끼는 것도 있었지만, 잘 꾸미지도 않은 장애인 엄마가 아이까지 데리고 다니며 물건을 사러 다니면 구매력 없는 사람으로 단정 짓고 가게 직원들이 응대도 잘해주지 않는다. 그나마 둥이가 어렸을 때는 그녀 혼자만 속상하면 되니 괜찮았지만, 둥이가 자라니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 저 아줌마가 엄마 말을 못 들었나 봐.” , “엄마 왜 자꾸 손을 떨어?” , “엄마 입이 계속 아파?”

그녀가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 숱하게 많이 들었던 질문이었다. 중,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그녀 주변의 친구들도 철이 들어 그녀 앞에서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고, 그래서 ‘나도 이제 괜찮아졌구나.’라고 착각하며 한동안 살고 있었는데 그 질문을 20년 후, 그녀의 아들이 그녀에게 묻는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다. 단지 그뿐이다. 이제는 그녀도 성장하여 그런 질문들이 자신을 놀리기 위함이 아님을 안다. 사실대로 대답만 해주면 된다. 그럼 아이들은 다른 호기심 대상을 찾는다.

“둥이도 지난주에 킥보드 타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다쳤었지? 엄마도 어릴 때 둥이처럼 다쳤는데 아직 상처가 낫지 않아서 그런 거야.”

그리고 미리 겁먹어서 한마디 더 한다.

“혹시 친구들이 둥이한테 ‘너희 엄마 왜 그래?’라고 물어보면, ‘응. 우리 엄마가 어릴 때 다쳤는데 상처가 남아서 그렇대.’라고 말할 수 있지?”

그리고 ‘알았어’라고 대답한 후, 아무렇지 않게 장난감 놀이를 하고 있는 둥이를 보며 그녀는 자신의 짐이 둥이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임신 때부터 모든 것을 둥이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던 그녀였지만, 속상함 만큼은 공유하고 싶지 않았는데 예외가 없다. 하지만 속상해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속상함도 어리광이었다. 둥이에게 말했 듯, 장애가 있지만 별 것 아니라고 말하려면 정말 그리 돼야 한다. 잘 지내야 된다. 엄마가 열심히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둥이에게 증명해야 된다.

그 방법으로 그녀가 선택한 것은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이다.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식 때문에 참고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비록 회사를 다니면 둥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작아지고, 가정에 소홀해지겠지만 그런 것 보다 더 귀한 걸 둥이에게 줄 수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와 그녀 어머니의 꿈이 비슷해졌다. 자신의 좋고 싫음 보다 아이를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아이가 상처 받지 않게 잘 크도록 기꺼이 거름이 되어 주는 것. 세상 모든 엄마의 꿈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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